평안남도 평원(平原) 출생. 1907년 석암교회(石巖敎會)를 설립하는 등 강성엽(康成燁)과 더불어 평원군일대의 개척교인이었으며 1913년에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목사안수를 받은 뒤 만주 간도지역의 전도 사업에 종사하였다.
광제암교회(廣濟巖敎會)를 비롯하여 20여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1921년 간도노회(間島老會) 창설시, 초대 노회장에 취임하였다. 한편, 간도의 한국이주민을 위하여 연변교민회(延邊僑民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4년 이동휘(李東輝)가 망명해오자 교민회를 독립운동단체인 국민회(國民會)로 개편하여 그 서부 분회장이 되었다. 3·1운동 당시에는 국민회 간부들과 주동하여 간도 용정(龍井)에서 3월 13일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만세시위를 벌이는 등 독립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