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백남(白南). 경상북도 영주 출신. 목사이며 신학자인 강신명(信明)의 아버지이다.
25세 무렵 기독교에 입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목사안수를 받고 풍기교회·명동제일교회 등에서 일하였다. 한편, 개화와 계몽운동에도 뜻을 두어 일찍이 영주 내명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봉직하였고, 안동 경안중학교의 교장도 역임하였다.
1943년에는 동흥학교(東興學校)를 세워 실용적인 교육에 힘썼다. 3·1운동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일본경찰에 붙잡혀 대구형무소에서 8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1938년에는 일제가 강요한 이른바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구속되었다.
농촌운동에도 힘써 농사개량법을 장려하고 소비조합제도를 만들었으며, 도박을 없애기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조선어학회의 유일한 목사회원으로서 한글보급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2년 총회종교교육부 교사양성과 과장으로 있으면서 서류 일체를 한글로 사용하게 하였고, 1934년 제23회 총회 때에는 성경 및 찬송가를 새 맞춤법에 따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한글보급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어학회가 펴낸 『큰 사전』 편찬에 기독교용어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한글 목사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