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치정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 북간도 민족교육기관인 명동중학교의 재무를 관리한 교육자.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14년 4월 21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9년(고종 16)
  • 출생지함경북도 종성군 화방면 녹야동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3년
  • 김태국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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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중국 만주 북간도 민족교육기관인 명동중학교의 재무를 관리한 교육자.

개설

중국 북간도의 대표적인 조선인 마을인 명동촌을 세우고, 민족교육기관인 명동학교의 설립에 참여하면서 재무를 담당하였다.

1879년 함경북도 종성군 화방면 녹야동에서 문명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세에 박정애와 결혼하여 2남 4녀를 두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99년 2월 18일에 문치정 집안의 40명, 남위언 집안의 7명, 김하규 집안의 63명, 김약연 집안의 31명 등 142명이 이상촌 건설과 인재교육 등을 목적으로 북간도 부걸라재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부걸라재를 ‘동방, 곧 한반도를 밝히는 곳’으로 만들고자 ‘명동촌’이라고 이름하고는 중국인 지주인 동한(董閑)에게 1,000여 경 규모의 땅을 매입하였다. 그 뒤 공동으로 부담하여 학전(學田)을 마련하였고, 학전에서 나오는 수입을 교육 기금으로 사용하였다.

1901년부터 이들 집안은 명동촌에 ‘규암재,’ ‘오룡재,’ ‘소암재’ 등의 서당을 세웠는데, 문치정은 1908년 4월 27일에 김약연 등과 함께 이전의 서당을 통합하여 명동서숙(明洞書塾)을 설립하고는 학교의 재정을 담당하였다. 그 뒤 명동서숙은 1909년에 명동학교로 바뀌었고, 1910년에는 명동중학으로 발전하였으며, 1911년에는 명동여학교가 설립되기도 하였다. 문치정은 계속 재무를 관리하면서 명동학교가 북간도지역 민족교육운동의 본산으로 기능하는데 힘썼다. 하지만 1914년 4월 21일에 엉덩이에 큰 종기가 난 것을 수술받다가 출혈이 멈추지 않고 감염되어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 - 『문재린·김신묵 회고록-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문영미, 삼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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