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만주 일대 한인 사회의 구심점으로, 항일구국과 애국애족 교육을 담당하며 독립운동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였던 학교이다.
중국 남만주 일대의 대표적인 기독교계 학교로, 1914년 10월에 한경희(韓敬禧, 1877∼1935) 목사가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설립하였다. 한경희는 1914년에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 일대에서 선교 사업을 전개하면서 이 학교를 설립하였고, 같은 시기에 삼원보 대화사에는 예배당을 세웠다. 1922년에 동명중학교로 확대하면서 삼성여학교를 설립하여 여성 교육에도 힘썼다.
동명학교는 평양 숭실학교에서 우수한 교사를 초빙하고, 한국 역사와 지리 관련 교과서를 사용하여 철저한 반일민족의식을 강조하면서 독립운동 간부를 양성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만주사변 직후인 1932년에 일제가 삼원포 일대를 완전히 점령하면서, 동명학교는 보통학교인 국민우급학교로 바뀌었고 삼원포 북문 밖의 한족학교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 교육이 이루어져 학생들은 우리말이 아닌 일본말을 사용하여 수업을 들어야 하였다.
동명학교는 1934년에 삼원포역 앞에 새로운 교사가 세워지면서 다시 이전 설립되었다. 당시는 일제의 감독 아래 일제를 찬양하는 교육이 노골화하였던 때였지만, 동명학교 교직원들은 항일구국과 애국애족 교육을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명학교는 중국 남만주 일대의 한인 학생에게 새로운 근대 문화를 전수한 교육 기관으로, 심화된 민족주의 교육을 통해 독립운동의 인재 양성에 힘썼다고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