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중국 길림성 통화현 배달촌에 있었던 민족학교.
개설
연원 및 변천
1920년에 일제가 만주 일대의 무고한 한인을 학살하는 경신참변을 일으켰을 때, 배달학교는 통화현 지역 반일운동의 본산으로 지목되었다. 11월에 교장 조용석을 포함하여 김기선(金基善, 1888~1920) · 조동호(趙東鎬) · 승대언(承大彦, 1874~1920) · 승병균(承昞均, 1893~1920) · 최찬화(崔贊化) · 김기준(金基畯, 1895?~1920) 등 교직원 7명은 배달학교를 습격한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처참하게 살해당했고, 배달학교는 폐교되었다. 그 뒤 학교 주변 마을 사람들은 일제의 감시와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 교직원 7명의 장례식을 간소하지만 정중하게 치루었다.
1996년에 중국 길림성 통화현 정부는 김기선의 후손과 함께 7인의 묘비와 묘소를 조성하였다. 묘소는 원래의 배달학교 터에서 약간 떨어져 있지만 마을이 보이는 곳에 잘 정돈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중국동북지역 한국독립운동사』(한국독립유공자협회, 집문당, 1997)
-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http://search.i815.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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