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례삼 ()

근대사
인물
해방 이후 연변문학연합회 주비위원회 비서장, 조선족민속학회 이사 등을 역임한 작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3년 1월 1일(음력)
사망 연도
2005년 5월 30일
출생지
함경남도 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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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연변문학연합회 주비위원회 비서장, 조선족민속학회 이사 등을 역임한 작가.
개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이다. 「동아일보」를 통해 문학 공부를 시작한 뒤, 중국 흑룡강성 일대 조선족 학교의 교원을 역임하고 길림성 일대에서 문학인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조선족 아동문학의 기틀을 놓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보통학교를 다닐 때 집안이 어려워 방과 후에 신문배달을 하며 학업을 이어나가며 「동아일보」를 통해 문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 뒤 무역상사의 잡부, 건축 현장의 막노동꾼, 흥남비료공장의 창고지기 등 여러 일을 하면서 밤에는 ‘무산자학교’를 열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1935년 10월에는 중국 흑룡강성 목릉현(穆陵縣) 흥원진에 이주하여 조선인 학교의 교원으로 활동하였고, 1945년에는 목단강시 서구 서안가 가장(街長), 청년부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다음해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자치주장인 주덕해(朱德海, 1911∼1972)가 조직한 ‘간부훈련반’에 들어가 3개월 동안 공부하고는 목단강 민주 동방문공단 단장을 맡았다.

1950년에 연길로 이주하여 연변문학연합회 주비위원회 비서장으로 일하였고, 1952년부터는 연변사범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다. 1956년 이후 연변인민출판사 문예부 주임, 아동문예부 주임을 역임하였고, 1963년부터 연변군중예술관에서 근무하였으며, 연변작가협회 회원, 중국민간문학협회 이사, 조선족민속학회 이사로 활약하였다.

1932년에 「매일신문」에 첫 동요인 ‘나는 빌어먹는 거러지’를 발표한 이래 평생 450수의 동요, 동시, 서정시를 발표하여, 조선족 아동문학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된다. 1980년에 민간이야기집 『천도복숭아』와 『꾀당나구의 꿈』을 간행하였고, 1988년과 1994년에는 동요동시집 『고개길』, 서정시집 『인생의 고행길』 등을 출간하였다. 2005년에 세상을 떠났다.

참고문헌

『中國少數民族文化大辭典ㆍ東北, 內蒙古地區』(鐵木爾ㆍ達瓦買提, 北京民族出版社,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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