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경에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태어났다. 1922년 8월에 통의부(統義府)가 구성되자 법무부원으로 참여한 뒤, 1925년 초까지는 통의부 사령관 부관, 헌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같은 해에 정의부(正義府) 헌병대장, 군사부 사령장 대리 및 부관으로 활동하다가 8월에는 다물청년당(多勿靑年黨)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다물청년당은 1923년 겨울에 봉천성(奉天省) 흥경현(興京縣)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조직으로, 1926년 초 전후에 다물당으로 발전하였다. ‘다물’은 ‘회복’을 뜻하는 말로, 우리 민족의 영토를 되찾는 구토회복(舊土回復)을 목표로 하였다. 1928년에는 길림(吉林)에서 열린 재만운동단체협의회에 정의부 대표로 참석하였고, 1929년에는 새로 구성된 국민부(國民府)에서 공안부(公安部) 집행위원과 경호국장을 맡았다.
그 뒤 1930년 8월에 조선혁명군 제4중대장으로 활동하였는데, 국민부가 민족주의파와 공산주의파로 분열되어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10월 10일에 국민부에 반대하는 농민동맹(農民同盟) 측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다.
2010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