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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순자 사건은 1991년에 3월 16일 이민자 두순자가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Latasha Harlins)를 절도범으로 오인하여 살해한 사건이다. 1991년 남부 LA지역의 한인 마켓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한국인과 흑인 간 갈등의 계기가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과 동양인 간 서로에 대한 편견과 갈등이 사건의 배경이다. 판결은 두순자가 재범의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4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 판결로 인해 흑인들의 사법시스템 및 한인들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었으며, 이듬해 발생한 LA폭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두순자 사건 (斗順子 事件)
두순자 사건은 1991년에 3월 16일 이민자 두순자가 흑인 소녀 라타샤 할린스(Latasha Harlins)를 절도범으로 오인하여 살해한 사건이다. 1991년 남부 LA지역의 한인 마켓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한국인과 흑인 간 갈등의 계기가 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과 동양인 간 서로에 대한 편견과 갈등이 사건의 배경이다. 판결은 두순자가 재범의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4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과 함께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 판결로 인해 흑인들의 사법시스템 및 한인들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었으며, 이듬해 발생한 LA폭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종림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교육위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집행위원, 북미지방동지회 대표회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고종 23)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쌀의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임시정부의 비행기대 편성 방침에 호응하여 자신의 농장에 비행훈련장을 건설하고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한인공동회를 설립하였다. 나성(LA)한인공동회, 대한인국국민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김종림 (金鐘林)
김종림은 일제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교육위원,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집행위원, 북미지방동지회 대표회회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86년(고종 23)에 태어나 1973년에 사망했다.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로 이민하여 ‘쌀의 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업가로 크게 성공하였다. 임시정부의 비행기대 편성 방침에 호응하여 자신의 농장에 비행훈련장을 건설하고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을 후원하고 선전할 목적으로 한인공동회를 설립하였다. 나성(LA)한인공동회, 대한인국국민회, 조선의용대 미주후원회 등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는 미주 한인들의 인권 보호와 사회참여를 증진하기 위하여 설립된 비영리·비정당 기구이다. 1994년 LA 4.29사태 이후 반이민 조류 속에서 한인의 정치적 참여를 활성하고자 설립되었다. 미주 한인 공동체 5개가 모여 발족하고 1995년 법인화하였다. 2008년 워싱턴 DC에 사무실을 개소했다. 교육 프로그램과 이민자 권익옹호 프로젝트 등을 진행 중이며, 민권 옹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1년에 두 차례 소식지도 발간하고 있다. 이민자로서 한인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美州韓人奉仕敎育團體協議會)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는 미주 한인들의 인권 보호와 사회참여를 증진하기 위하여 설립된 비영리·비정당 기구이다. 1994년 LA 4.29사태 이후 반이민 조류 속에서 한인의 정치적 참여를 활성하고자 설립되었다. 미주 한인 공동체 5개가 모여 발족하고 1995년 법인화하였다. 2008년 워싱턴 DC에 사무실을 개소했다. 교육 프로그램과 이민자 권익옹호 프로젝트 등을 진행 중이며, 민권 옹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1년에 두 차례 소식지도 발간하고 있다. 이민자로서 한인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터전이 되었다.
1993년 3월∼4월에 아르헨티나 백구촌에서 일어난 한인과 아르헨티나인의 갈등 사건.
4월 사태 (四月 事態)
1993년 3월∼4월에 아르헨티나 백구촌에서 일어난 한인과 아르헨티나인의 갈등 사건.
LA갈비는 갈비뼈를 직각 방향으로 잘라서 갈빗살 사이에 갈비뼈가 붙어 있는 형태로 양념장에 재웠다가 구운 음식이다. 유래에 관해서는 미국 LA의 한국인 이민자들이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쓰던 프랑켄(Flanken) 방식의 절단법을 이용한 소갈비를 한국의 방식에 맞게 양념갈비로 먹으면서 유행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 말쯤에 ‘LA갈비’라는 명칭으로 한국에 역수입되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인기를 얻었다.
LA갈비
LA갈비는 갈비뼈를 직각 방향으로 잘라서 갈빗살 사이에 갈비뼈가 붙어 있는 형태로 양념장에 재웠다가 구운 음식이다. 유래에 관해서는 미국 LA의 한국인 이민자들이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쓰던 프랑켄(Flanken) 방식의 절단법을 이용한 소갈비를 한국의 방식에 맞게 양념갈비로 먹으면서 유행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1980년대 말쯤에 ‘LA갈비’라는 명칭으로 한국에 역수입되었으며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인기를 얻었다.
LA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LA지역 한인 이민자들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감리교회이다. 한인 이민사회의 친교와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 되어 민족문화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배양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요람으로 활동한 민족 교회였다. 한인 이민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사회 내에서 원만한 유대 관계를 도모하도록 하며, 한인들 간 결속과 단결을 증진시켜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고 확립하고자 하였다.
LA연합감리교회 (LA聯合監理敎會)
LA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LA지역 한인 이민자들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감리교회이다. 한인 이민사회의 친교와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 되어 민족문화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배양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요람으로 활동한 민족 교회였다. 한인 이민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사회 내에서 원만한 유대 관계를 도모하도록 하며, 한인들 간 결속과 단결을 증진시켜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고 확립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