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시장(大邱 西門市場)
저지대를 정리하기 위해 많은 객토(客土)가 필요하였는데, 그것은 오늘날 내당동·비산동 고지대에 있던 고분군의 봉토를 실어다가 메웠다. 1923년 1년 동안의 총거래액 1만 4,500원(쌀 1말 3원, 지수 100.0)이던 것이 1928년 259만 5,768원(쌀 1말 3원, 지수 1,790.2)에 달하여서, 불과 5년 사이에 구시대의 서문시장의 명성을 되찾았다. 서문시장은 민족항일기 말기의 통제경제시대를 당하여 온갖 곤욕을 치렀고, 광복 후의 무질서 속에서 여러 차례 뜻하지 않았던 화재가 일어나서 많은 이재민을 내었다. 이어서 또 불행스러운 6·25전쟁을 치렀다. 휴전협정이 성립되자 전쟁 후의 특수경기를 맞게 되었다. 전통적인 섬유도시인 대구 주변의 각종 직물공업을 배경으로 하여 서문시장에는 전국 최대규모의 포목 도매·소매 시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