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복(便服)
흰 창의에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검은 헝겊으로 넓게 선을 대었다. 여기에는 흔히 복건을 썼으며, 정자관·동파관·와룡관(臥龍冠)·방건 등을 쓰기도 썼다. 한말 개화기를 맞이하면서부터 두루마기를 주로 착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창의에 무를 가하고 양옆을 막고 소매가 좁아진 형태이다. 신발은 착용자의 지체와 형편에 따라 재료와 정조(精粗)에 차이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피혁제인 태사혜를 가장 많이 신었다. 그 밖에 짚신도 정제품(精製品)일 경우에는 신었다. - 『고려도경(高麗圖經)』 - 『경도잡지(京都雜志)』 - 『한국복식사연구』(김동욱, 아세아문화사, 1979) - 『한국복식사연구』(류희경,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80) - 「우리 복식에 있어서의 편복(便服) 포제(袍制)의 변천에 대하여」(김동욱, 『동방학지』 7,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