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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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집현전부수찬, 집현전응교, 집현전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남수문 (南秀文)
조선 전기에, 집현전부수찬, 집현전응교, 집현전직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남은은 고려후기 삼척지군사, 밀직부사, 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54년(공민왕 3)에 태어나 1398년(태조 7)에 사망했다. 정도전 등과 함께 이성계 일파의 중심 인물로서 구세력과 대립했다. 위화도회군을 진언하고 이성계 왕위 추대에 참여했고, 새 도읍지인 한양의 종묘와 궁궐 터 등을 정했다. 정조사의 표문이 명 태조의 비위를 거슬러 글을 초안한 정도전을 명으로 압송하라는 압력을 가해오자 정도전과 함께 요동정벌을 계획하기도 했다. 태조를 도와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적극 간여했다가 정도전과 함께 살해당했다.
남은 (南誾)
남은은 고려후기 삼척지군사, 밀직부사, 지문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54년(공민왕 3)에 태어나 1398년(태조 7)에 사망했다. 정도전 등과 함께 이성계 일파의 중심 인물로서 구세력과 대립했다. 위화도회군을 진언하고 이성계 왕위 추대에 참여했고, 새 도읍지인 한양의 종묘와 궁궐 터 등을 정했다. 정조사의 표문이 명 태조의 비위를 거슬러 글을 초안한 정도전을 명으로 압송하라는 압력을 가해오자 정도전과 함께 요동정벌을 계획하기도 했다. 태조를 도와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적극 간여했다가 정도전과 함께 살해당했다.
남재는 조선전기 도병마사, 경기도관찰사,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51년(충정왕 3)에 태어나 1419년(세종 1)에 사망했다. 아우 남은과 함께 이성계의 세력에 가담해 구세력과 대립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지하여 회군공신에 책봉되었고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였고, 일지도와 대마도를 정벌했다. 태종이 즉위하자 세자의 서연관에 빈객이 되었으며 『고려사』를 개수했다. 『국조인물고』와 『약천집』 등에 의하면 산술에 능하여서 ‘남산(南算)’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남재 (南在)
남재는 조선전기 도병마사, 경기도관찰사,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51년(충정왕 3)에 태어나 1419년(세종 1)에 사망했다. 아우 남은과 함께 이성계의 세력에 가담해 구세력과 대립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지하여 회군공신에 책봉되었고 개국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였고, 일지도와 대마도를 정벌했다. 태종이 즉위하자 세자의 서연관에 빈객이 되었으며 『고려사』를 개수했다. 『국조인물고』와 『약천집』 등에 의하면 산술에 능하여서 ‘남산(南算)’이라는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남지 (南智)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남효의 (南孝義)
조선 전기에, 대사헌,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