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안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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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은 372년 고구려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기록상 고구려 최초의 학교이자 한국 최초의 학교로서 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박사나 조교가 교수자였고, 귀족 자제들이 학생이었으며, 오경 등 유교 경전을 가르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당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학교였으며, 고구려 멸망 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학 (太學)
태학은 372년 고구려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기록상 고구려 최초의 학교이자 한국 최초의 학교로서 관료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박사나 조교가 교수자였고, 귀족 자제들이 학생이었으며, 오경 등 유교 경전을 가르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당과 함께 고구려의 대표적 학교였으며, 고구려 멸망 전까지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주만 경북교육감 자살사건은 1974년 1월 일어난 경상북도 고등학교 입시 부정에 대해 당시 교육감 김주만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살한 사건이다. 1974년 1월 28일 실시된 경상북도 고등학교 입시에서 부정이 발생한 데 대하여 당시 교육감이었던 김주만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자살한 사건이다. 당시 연이어 터진 입시 부정사건과 황폐화한 사도(師道) 타락에 대한 경종을 울린 사건이며, ‘사도의 죽음’으로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김주만 경북교육감 자살사건 (金宙晩 慶北敎育監 自殺事件)
김주만 경북교육감 자살사건은 1974년 1월 일어난 경상북도 고등학교 입시 부정에 대해 당시 교육감 김주만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살한 사건이다. 1974년 1월 28일 실시된 경상북도 고등학교 입시에서 부정이 발생한 데 대하여 당시 교육감이었던 김주만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한 뒤 자살한 사건이다. 당시 연이어 터진 입시 부정사건과 황폐화한 사도(師道) 타락에 대한 경종을 울린 사건이며, ‘사도의 죽음’으로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무즙파동은 1964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 시내 전기 중학교 입시에서 자연 과목 선다형 문제의 정답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야기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입시 출제방식의 논의를 불러왔고, 1969학년도부터 무시험 추첨에 의한 중학교 입시제도가 서울에서 채택되었다.
무즙파동 (무汁波動)
무즙파동은 1964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 시내 전기 중학교 입시에서 자연 과목 선다형 문제의 정답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야기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입시 출제방식의 논의를 불러왔고, 1969학년도부터 무시험 추첨에 의한 중학교 입시제도가 서울에서 채택되었다.
무림사건은 1980년 서울대학교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구속하거나 강제 입대시킨 시국 사건이다. 1980년 12월 11일 서울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으로 몰아 고문 조사를 진행하여 9명을 구속하고 90여 명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이다. 신군부 출범 이후 침체된 학생운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사건이며, 이후 학림사건, 부림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무림사건 (霧林事件)
무림사건은 1980년 서울대학교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구속하거나 강제 입대시킨 시국 사건이다. 1980년 12월 11일 서울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으로 몰아 고문 조사를 진행하여 9명을 구속하고 90여 명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이다. 신군부 출범 이후 침체된 학생운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사건이며, 이후 학림사건, 부림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전국학련구국대는 1950년, 전국학생총연맹 간부 출신들이 조직한 학도의용군이다. 6 · 25전쟁 초기에 부족한 병력 충원과 군 사기 진작에 도움을 주었다. 활동 목적은 학도지원병 모집과 후방 선무공작, 후방 치안 등이었고, 내무부 협조를 얻어 활약하였다. 9 · 28서울수복 이후 해체되었다. 학생 신분으로 국가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나 투쟁하였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전국학련구국대 (全國學聯救國隊)
전국학련구국대는 1950년, 전국학생총연맹 간부 출신들이 조직한 학도의용군이다. 6 · 25전쟁 초기에 부족한 병력 충원과 군 사기 진작에 도움을 주었다. 활동 목적은 학도지원병 모집과 후방 선무공작, 후방 치안 등이었고, 내무부 협조를 얻어 활약하였다. 9 · 28서울수복 이후 해체되었다. 학생 신분으로 국가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나 투쟁하였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있다.
학림사건은 1981년, 신군부가 반독재 민주화를 주장하던 학생운동, 사회운동 관련자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처벌한 사건이다. 1981년 전국민주화학생연맹, 전국민주노동자연맹 등 학생운동, 사회운동 단체가 반독재 민주화를 주장하며 신군부에 저항하자 관련자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처벌한 사건이다. 신군부 정권의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학원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학림사건 (學林事件)
학림사건은 1981년, 신군부가 반독재 민주화를 주장하던 학생운동, 사회운동 관련자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처벌한 사건이다. 1981년 전국민주화학생연맹, 전국민주노동자연맹 등 학생운동, 사회운동 단체가 반독재 민주화를 주장하며 신군부에 저항하자 관련자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처벌한 사건이다. 신군부 정권의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학원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재일한국인교육헌장은 1969년 3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에 따라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 정책을 천명한 헌장이다. 한국에서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1968년 12월 5일 대통령에 의하여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되었는데, 그 취지를 해외에까지 전파하려 하였다. 일본에서도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 정책을 천명한 교육헌장이 만들어졌다.
재일한국인 교육헌장 (在日韓國人 敎育憲章)
재일한국인교육헌장은 1969년 3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 한국의 국민교육헌장에 따라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 정책을 천명한 헌장이다. 한국에서 국민의 윤리와 정신적인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1968년 12월 5일 대통령에 의하여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되었는데, 그 취지를 해외에까지 전파하려 하였다. 일본에서도 재일한국인의 민족교육 정책을 천명한 교육헌장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