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안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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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은 고구려 말기와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주로 활동한 무관이다. 문헌 사료에는 관련 내용이 보이지 않으며, 당나라에서 출토된 묘지명에만 보인다. 고구려에서 당으로 건너간 유민 1세대인 고질은 당 조정에서 주로 군사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구축하며 생존하였던 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수이다. 고구려 유민이 당의 조정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활동하였는지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고질 (高質)
고질은 고구려 말기와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중국 당나라에서 주로 활동한 무관이다. 문헌 사료에는 관련 내용이 보이지 않으며, 당나라에서 출토된 묘지명에만 보인다. 고구려에서 당으로 건너간 유민 1세대인 고질은 당 조정에서 주로 군사적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구축하며 생존하였던 고구려 유민 출신의 장수이다. 고구려 유민이 당의 조정에서 어떻게 처신하며 활동하였는지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석이다. 삼국시대인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건립되었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된 광개토왕릉비문은 사료가 부족한 4~5세기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와 더불어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일대 여러 세력들의 정세도 함께 살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광개토왕릉비 (廣開土王陵碑)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는 중국 지린성 집안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석이다. 삼국시대인 고구려의 제20대 장수왕에 의해 건립되었다. 19세기 말에 재발견된 광개토왕릉비문은 사료가 부족한 4~5세기 고구려의 정치 · 사회사와 더불어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일대 여러 세력들의 정세도 함께 살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말객(末客)은 고구려 후기, 궁정을 지키고 수도의 치안과 의장대의 임무를 맡았던 무관 관직이다. 고구려의 제7등급 관등인 대형(大兄) 혹은 그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취임할 수 있으며, 휘하에 1,000명의 병사를 거느렸다.
말객 (末客)
말객(末客)은 고구려 후기, 궁정을 지키고 수도의 치안과 의장대의 임무를 맡았던 무관 관직이다. 고구려의 제7등급 관등인 대형(大兄) 혹은 그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가 취임할 수 있으며, 휘하에 1,000명의 병사를 거느렸다.
부산(富山)은 고구려 중기에 광개토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요서 지역으로 진격하면서 거쳐갔던 지명이다. 관련 내용은 중국측 사서와 「광개토왕릉비」에 등장한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고구려군이 공손도를 도와서 ‘부산의 적'을 공격하여 깨뜨렸다는 기사가 있으며, 「광개토왕릉비」에는 광개토왕이 서요하의 패려라는 부족을 공격하면서 부산을 지났다는 기사가 있다. 위치는 랴오닝성 개원시 혹은 창도현 방면으로 볼 수 있다.
부산 (富山)
부산(富山)은 고구려 중기에 광개토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이 요서 지역으로 진격하면서 거쳐갔던 지명이다. 관련 내용은 중국측 사서와 「광개토왕릉비」에 등장한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고구려군이 공손도를 도와서 ‘부산의 적'을 공격하여 깨뜨렸다는 기사가 있으며, 「광개토왕릉비」에는 광개토왕이 서요하의 패려라는 부족을 공격하면서 부산을 지났다는 기사가 있다. 위치는 랴오닝성 개원시 혹은 창도현 방면으로 볼 수 있다.
부산(負山)은 고구려 중기, 흥안령(興安嶺)산맥 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광개토왕릉비」에 등장하는데, 395년 당시 광개토왕의 고구려군이 패려라는 세력을 치기 위하여 지나갔던 곳이다. 요령성 개원시 혹은 창도현 방면으로 비정되는 부산(富山)에서 서요하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산지(山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대략 흥안령(興安嶺)산맥 남쪽 끝의 어느 지점으로 추정된다.
부산 (負山)
부산(負山)은 고구려 중기, 흥안령(興安嶺)산맥 남쪽에 있는 지명이다. 「광개토왕릉비」에 등장하는데, 395년 당시 광개토왕의 고구려군이 패려라는 세력을 치기 위하여 지나갔던 곳이다. 요령성 개원시 혹은 창도현 방면으로 비정되는 부산(富山)에서 서요하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산지(山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대략 흥안령(興安嶺)산맥 남쪽 끝의 어느 지점으로 추정된다.
북풍(北豊)은 고구려 중기, 요동 방면에 있던 지명이다.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395년(광개토왕 5)에 광개토왕이 요서 지역에 있던 패려를 공략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풍을 지나며 영토를 시찰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438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망명한 북연의 왕 풍홍을 평고가에 두었다가 나중에 북풍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북풍의 위치는 크게 요령성 개주시에서 멀지 않은 요동반도 남서부의 해안가 일대로 보는 의견, 그보다 동쪽의 내륙 지역인 요령성 수암현이나 본계시 일대로 보는 의견 등이 있다.
북풍 (北豊)
북풍(北豊)은 고구려 중기, 요동 방면에 있던 지명이다. 「광개토왕릉비」를 보면 395년(광개토왕 5)에 광개토왕이 요서 지역에 있던 패려를 공략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풍을 지나며 영토를 시찰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438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망명한 북연의 왕 풍홍을 평고가에 두었다가 나중에 북풍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북풍의 위치는 크게 요령성 개주시에서 멀지 않은 요동반도 남서부의 해안가 일대로 보는 의견, 그보다 동쪽의 내륙 지역인 요령성 수암현이나 본계시 일대로 보는 의견 등이 있다.
선인(先人)은 삼국시대, 3세기부터 고구려에 있었던 관등이다. 선인이 설치된 기원은 3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7세기에도 총 13등급 관등제의 최하위 관등으로 등장한다. 말기에는 보통 관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이 처음 임용되면서 받는 관등이었다.
선인 (先人)
선인(先人)은 삼국시대, 3세기부터 고구려에 있었던 관등이다. 선인이 설치된 기원은 3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7세기에도 총 13등급 관등제의 최하위 관등으로 등장한다. 말기에는 보통 관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이 처음 임용되면서 받는 관등이었다.
설유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영토 확장에 기여한 환나부의 패자(沛者)이다. 설유는 고구려 왕의 명령에 따라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주나를 정벌하였다. 1세기 중후반 당시 고구려가 5나부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압록강 중류 유역의 독자 세력을 하나둘씩 통합해 나가던 과정에서 일정 부분 기여한 인물이다.
설유 (薛儒)
설유는 삼국시대 고구려 초기의 영토 확장에 기여한 환나부의 패자(沛者)이다. 설유는 고구려 왕의 명령에 따라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주나를 정벌하였다. 1세기 중후반 당시 고구려가 5나부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압록강 중류 유역의 독자 세력을 하나둘씩 통합해 나가던 과정에서 일정 부분 기여한 인물이다.
연헌성은 삼국시대 고구려 말기와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와 무주 정권에서 활동한 관료이다. 연헌성은 고구려 말기의 최고 집정자였던 연개소문의 손자이자 연남생의 아들이다. 부친과 함께 당나라에 항복한 이후 당 조정에서 복무하였으며, 주로 군사적인 활동을 하였다. 내준신(來俊臣)의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
연헌성 (淵獻誠)
연헌성은 삼국시대 고구려 말기와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와 무주 정권에서 활동한 관료이다. 연헌성은 고구려 말기의 최고 집정자였던 연개소문의 손자이자 연남생의 아들이다. 부친과 함께 당나라에 항복한 이후 당 조정에서 복무하였으며, 주로 군사적인 활동을 하였다. 내준신(來俊臣)의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
영화(永和)는 중국 동진시대 중국왕조의 연호이다. 동진(東晉)시대의 '영화' 연호(年號)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몇몇 무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체적으로 안악3호분, 그리고 평안남도 평양시 평양역 구내에서 발견된 동리(佟利)라는 인물의 무덤에 있던 문자가 새겨진 벽돌에서도 발견된다.
영화 (永和)
영화(永和)는 중국 동진시대 중국왕조의 연호이다. 동진(東晉)시대의 '영화' 연호(年號)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몇몇 무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체적으로 안악3호분, 그리고 평안남도 평양시 평양역 구내에서 발견된 동리(佟利)라는 인물의 무덤에 있던 문자가 새겨진 벽돌에서도 발견된다.
은부는 남북국시대 궁예 정권에서 내군장군(內軍將軍) 등을 지낸 무신이다. 궁예의 휘하에서 친위군을 이끌며 국왕의 신변 경호를 담당한 내군장군직에 있었고, 궁예가 대신들을 숙청할 때 이를 함께 주도하였다. 왕건의 고려가 들어선 직후 과거 궁예의 친위 세력이었던 전력이 문제가 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은부 (猌鈇)
은부는 남북국시대 궁예 정권에서 내군장군(內軍將軍) 등을 지낸 무신이다. 궁예의 휘하에서 친위군을 이끌며 국왕의 신변 경호를 담당한 내군장군직에 있었고, 궁예가 대신들을 숙청할 때 이를 함께 주도하였다. 왕건의 고려가 들어선 직후 과거 궁예의 친위 세력이었던 전력이 문제가 되어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