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유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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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백화점은 일제강점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최남(崔楠)이 설립한 근대식 백화점이다. 1932년 일본 자본으로 설립된 세 개의 백화점에 대항하여 최남이 민족 자본으로 서울의 종로에 세운 백화점이다. 일본은 일제의 자본을 바탕으로 세운 백화점을 통해 유리한 유통망을 확보하고 물건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면서 서울의 상권을 해당 백화점을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이에 대적하고자 일본에 유출되는 자본 및 서울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남이 동아백화점을 세워 운영하였다. 이후 동아백화점은 화신백화점으로 통합되어 운영되면서 종로의 상권을 형성하였다.
동아백화점 (東亞百貨店)
동아백화점은 일제강점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최남(崔楠)이 설립한 근대식 백화점이다. 1932년 일본 자본으로 설립된 세 개의 백화점에 대항하여 최남이 민족 자본으로 서울의 종로에 세운 백화점이다. 일본은 일제의 자본을 바탕으로 세운 백화점을 통해 유리한 유통망을 확보하고 물건을 낮은 가격에 공급하면서 서울의 상권을 해당 백화점을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이에 대적하고자 일본에 유출되는 자본 및 서울의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남이 동아백화점을 세워 운영하였다. 이후 동아백화점은 화신백화점으로 통합되어 운영되면서 종로의 상권을 형성하였다.
묵은은 개항기 멕시코에서 생산된 은으로 주조한 은화로, 무역 결제 수단 및 관세 납부 그리고 국내 통화로 사용된 화폐이다. 개항장에서 상대국이 조선과 교역한 무역의 대가 혹은 무역의 대가로 지불해야 할 관세로 교환하는 데 사용되었다. 당시 순도 높은 은이 가장 많이 생산되었던 멕시코에서 국제 거래 수단으로 은화를 제작하여 무역 결제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개항기 당시 멕시코를 지칭하는 한자식 표기가 ‘묵서가(墨西哥)’이었으므로 앞글자를 차용하여 멕시코산 은으로 제작한 주화를 '묵은'이라고 하였다.
묵은 (墨銀)
묵은은 개항기 멕시코에서 생산된 은으로 주조한 은화로, 무역 결제 수단 및 관세 납부 그리고 국내 통화로 사용된 화폐이다. 개항장에서 상대국이 조선과 교역한 무역의 대가 혹은 무역의 대가로 지불해야 할 관세로 교환하는 데 사용되었다. 당시 순도 높은 은이 가장 많이 생산되었던 멕시코에서 국제 거래 수단으로 은화를 제작하여 무역 결제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개항기 당시 멕시코를 지칭하는 한자식 표기가 ‘묵서가(墨西哥)’이었으므로 앞글자를 차용하여 멕시코산 은으로 제작한 주화를 '묵은'이라고 하였다.
미면교환체제는 개항기 이후 조선에서 생산된 미곡이 일본을 통해 들어온 면포로 교환되어 유출되는 구조이다. 조선의 농업 생산물인 쌀과 일본에서 수입하여 조선에 판매한 면포가 조선의 개항장에서 수출입으로 교환되었던 구조를 의미한다. 일본은 직접 생산하지는 않았지만 영국과 중국 상해에서 수입한 면포를 조선에 판매하여 무역 이익을 올리고 있는데, 당시 일본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의 단점을 보완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저가로 안정시키기 위해, 자국의 쌀 가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조선에서 미곡을 저가로 유출시켜 수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미면교환체제 (米綿交換體制)
미면교환체제는 개항기 이후 조선에서 생산된 미곡이 일본을 통해 들어온 면포로 교환되어 유출되는 구조이다. 조선의 농업 생산물인 쌀과 일본에서 수입하여 조선에 판매한 면포가 조선의 개항장에서 수출입으로 교환되었던 구조를 의미한다. 일본은 직접 생산하지는 않았지만 영국과 중국 상해에서 수입한 면포를 조선에 판매하여 무역 이익을 올리고 있는데, 당시 일본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의 단점을 보완하고 노동자의 임금을 저가로 안정시키기 위해, 자국의 쌀 가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고, 조선에서 미곡을 저가로 유출시켜 수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가내공업은 일제강점기에 가족 노동력을 활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던 공업 형태이다. 가내공업은 가족 노동력을 이용하여 가내에서 소규모 설비를 갖추고 필요한 생산물을 제작하거나 판매를 위한 약간의 잉여 생산물을 제작하던 방식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자신들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한반도에 공장을 설립하여 공장제 생산 체제가 유입되었지만, 일본의 투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조선에서 가내공업은 전근대적 생산 방식을 유지하며 방직(紡織), 요업(窯業), 화학, 목제품 제작과 같은 분야에서 생산의 일부를 책임지며 존속하였다.
가내공업 (家內工業)
가내공업은 일제강점기에 가족 노동력을 활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던 공업 형태이다. 가내공업은 가족 노동력을 이용하여 가내에서 소규모 설비를 갖추고 필요한 생산물을 제작하거나 판매를 위한 약간의 잉여 생산물을 제작하던 방식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자신들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한반도에 공장을 설립하여 공장제 생산 체제가 유입되었지만, 일본의 투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조선에서 가내공업은 전근대적 생산 방식을 유지하며 방직(紡織), 요업(窯業), 화학, 목제품 제작과 같은 분야에서 생산의 일부를 책임지며 존속하였다.
결수연명부는 일제강점기에 백성들에게 토지세를 부과하기 위해 제출한 토지 결수신고서를 묶은 문서이다. 1910년 6월부터 1912년 2월 사이, 일제가 새로 재편한 행정 구역인 면을 단위로 징세에 필요한 토지 소유 정보를 한데 묶은 장부이다. 이후 일제가 시작한 토지조사사업(土地調査事業)에서 결수연명부는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기본 자료로 활용되었다.
결수연명부 (結數連名簿)
결수연명부는 일제강점기에 백성들에게 토지세를 부과하기 위해 제출한 토지 결수신고서를 묶은 문서이다. 1910년 6월부터 1912년 2월 사이, 일제가 새로 재편한 행정 구역인 면을 단위로 징세에 필요한 토지 소유 정보를 한데 묶은 장부이다. 이후 일제가 시작한 토지조사사업(土地調査事業)에서 결수연명부는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기본 자료로 활용되었다.
경성수형교환소는 일제강점기, 어음을 교환하고 금융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성에 세운 기관이다. 1910년 7월에 서울에 설립했다. 당시 은행 간 발급한 어음의 교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비용을 절감하고자 서울에 설치하였고 이후 경제 규모가 큰 대도시로 확대하여 설치되었다. 특히 새로 설립한 수형교환소에서는 전근대 조선에서 사용하던 어음과 조선의 은행에서 사용하던 어음의 교환을 저지하고 일제가 발행한 신식 어음만을 교환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일제의 조선 내 자본 침투가 유리하도록 조선의 자본 시장 질서를 재편하고자 시도하였다.
경성수형교환소 (京城手形交換所)
경성수형교환소는 일제강점기, 어음을 교환하고 금융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성에 세운 기관이다. 1910년 7월에 서울에 설립했다. 당시 은행 간 발급한 어음의 교환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비용을 절감하고자 서울에 설치하였고 이후 경제 규모가 큰 대도시로 확대하여 설치되었다. 특히 새로 설립한 수형교환소에서는 전근대 조선에서 사용하던 어음과 조선의 은행에서 사용하던 어음의 교환을 저지하고 일제가 발행한 신식 어음만을 교환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일제의 조선 내 자본 침투가 유리하도록 조선의 자본 시장 질서를 재편하고자 시도하였다.
남면북양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 일제가 전시 물자의 자급을 위해 한반도의 북쪽에는 양모 생산을, 남쪽에서는 면포 생산에 주력하고자 시도한 정책이다. 남면북양 정책은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고 만주사변으로 전시 체제로 들어간 시기에 일제가 수입에 의존하여 군수로 활용하던 면화(綿花)와 양모의 자급을 위해 세운 계획을 지칭한다. 일본 국내에서 자급할 수 없는 품목 생산의 대체지로 선택한 조선의 기후와 자연조건을 고려하여 한반도 남쪽에는 면화를 북쪽에서는 양모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려는 계획이다.
남면북양 (南綿北羊)
남면북양은 일제강점기 1930년대, 일제가 전시 물자의 자급을 위해 한반도의 북쪽에는 양모 생산을, 남쪽에서는 면포 생산에 주력하고자 시도한 정책이다. 남면북양 정책은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가 블록화되고 만주사변으로 전시 체제로 들어간 시기에 일제가 수입에 의존하여 군수로 활용하던 면화(綿花)와 양모의 자급을 위해 세운 계획을 지칭한다. 일본 국내에서 자급할 수 없는 품목 생산의 대체지로 선택한 조선의 기후와 자연조건을 고려하여 한반도 남쪽에는 면화를 북쪽에서는 양모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려는 계획이다.
역둔토는 대한제국기에 역토(驛土)·둔토(屯土)·궁장토(宮庄土)를 각 역과 관서 그리고 궁방 소유에서 1908년 이후 국유화한 토지이다. 각 역(驛), 궁방(宮房) 군문을 포함한 관서의 운영을 위해 국가에서 해당 기관에 지급했던 토지이다. 따라서 국가에 세금을 별도로 지불하지 않고 해당 기관의 운영 자금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역둔토는 대한제국기에 농상공부와 내장원에서 조사를 통해 국가의 중앙 기관에서 일원적으로 파악하면서 확보하였고, 면세 혜택을 중지하여 국가의 새로운 재정으로 편입된 국유지이다.
역둔토 (驛屯土)
역둔토는 대한제국기에 역토(驛土)·둔토(屯土)·궁장토(宮庄土)를 각 역과 관서 그리고 궁방 소유에서 1908년 이후 국유화한 토지이다. 각 역(驛), 궁방(宮房) 군문을 포함한 관서의 운영을 위해 국가에서 해당 기관에 지급했던 토지이다. 따라서 국가에 세금을 별도로 지불하지 않고 해당 기관의 운영 자금으로 활용되었다. 이후 역둔토는 대한제국기에 농상공부와 내장원에서 조사를 통해 국가의 중앙 기관에서 일원적으로 파악하면서 확보하였고, 면세 혜택을 중지하여 국가의 새로운 재정으로 편입된 국유지이다.
지계는 1898년부터 1903년 사이 대한제국기 토지소유권을 인정하기 위해 지계아문(地契衙門)에서 토지소유자에게 발급한 문서이다. 이를 위해 대한제국에서는 토지 소유를 조사하기 위해 양지아문(量地衙門)을 설치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관에서 증명한 지계를 발급하였다.
지계 (地契)
지계는 1898년부터 1903년 사이 대한제국기 토지소유권을 인정하기 위해 지계아문(地契衙門)에서 토지소유자에게 발급한 문서이다. 이를 위해 대한제국에서는 토지 소유를 조사하기 위해 양지아문(量地衙門)을 설치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토지의 소유권을 관에서 증명한 지계를 발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