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석원"
검색결과 총 8건
김기호는 조선 후기 『구령요의』, 『소원신종』, 『봉교자술』 등을 저술한 천주교 지도자이다.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고, 황해도 및 평안도의 전교 회장에 임명되었다. 1866년 박해 이후 은거했다가, 1876년 선교사제들이 재입국하자 교회 활동을 재개했다. 블랑 주교의 복사이자 도회장(都會長)으로 활동하면서 신자 교육, 천주교 서적 저술을 했다. 1883년 블랑 주교의 성성식에 수행하여 참석했다. 1891년 모든 직무를 내려놓고 하우현에 정착하여 공소 강당 건립과 본당 설정에 힘썼으며, 1903년에 사망했다.
김기호 (金起浩)
김기호는 조선 후기 『구령요의』, 『소원신종』, 『봉교자술』 등을 저술한 천주교 지도자이다. 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고, 황해도 및 평안도의 전교 회장에 임명되었다. 1866년 박해 이후 은거했다가, 1876년 선교사제들이 재입국하자 교회 활동을 재개했다. 블랑 주교의 복사이자 도회장(都會長)으로 활동하면서 신자 교육, 천주교 서적 저술을 했다. 1883년 블랑 주교의 성성식에 수행하여 참석했다. 1891년 모든 직무를 내려놓고 하우현에 정착하여 공소 강당 건립과 본당 설정에 힘썼으며, 1903년에 사망했다.
병인박해는 조선 후기 1866년부터 1873년까지 8년 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된 천주교 박해이다. 프랑스와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대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회담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조선 정부 내의 반발로 결렬되었고,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병인양요(1866년)와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년), 신미양요(1871년) 등 서양 국가와의 충돌은 박해를 격화시켜 교회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박해가 끝났다.
병인박해 (丙寅迫害)
병인박해는 조선 후기 1866년부터 1873년까지 8년 동안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된 천주교 박해이다. 프랑스와의 조약을 통해 러시아의 남하를 막고 대신 천주교를 공인받으려는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회담은 국제 정세의 변화와 조선 정부 내의 반발로 결렬되었고,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다. 병인양요(1866년)와 남연군묘 도굴 사건(1868년), 신미양요(1871년) 등 서양 국가와의 충돌은 박해를 격화시켜 교회 조직이 철저히 파괴되었고, 수천 명의 순교자가 탄생했다. 1873년 흥선대원군의 하야로 박해가 끝났다.
성가소비녀회는 1943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생제(Singer, 成載德) 신부에 의하여 창설된 여성 방인수도회(邦人修道會)이자 서울대교구 설립 수도회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돕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혜화동에 설립한 수녀회는 1968년 현재의 정릉동으로 이전되었으며, 1990년대에 체제와 사업을 대폭 쇄신했다. 2008년에 의정부관구와 인천관구를 설립했다. 국내와 해외에 파견되어 선교, 본당사목, 사회사업, 의료 사업, 유아 교육, 빈민 사목, 생태 환경, 교포 사목, 한글 학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성가소비녀회 (聖家小卑女會)
성가소비녀회는 1943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생제(Singer, 成載德) 신부에 의하여 창설된 여성 방인수도회(邦人修道會)이자 서울대교구 설립 수도회이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돕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혜화동에 설립한 수녀회는 1968년 현재의 정릉동으로 이전되었으며, 1990년대에 체제와 사업을 대폭 쇄신했다. 2008년에 의정부관구와 인천관구를 설립했다. 국내와 해외에 파견되어 선교, 본당사목, 사회사업, 의료 사업, 유아 교육, 빈민 사목, 생태 환경, 교포 사목, 한글 학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양업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며 두 번째 사제로 11년 6개월 동안 사목 활동을 한 신부이다.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7년부터 1842년까지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42년 마카오를 떠나 북만주 소팔가자에 머물렀고, 1844년 페레올 주교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1846년부터 몇 차례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조선에 입국했다. 수년간 광범위한 지역의 사목을 도맡아 하며 순교자 행적 조사, 교리서와 기도서 번역에 힘쓰다 1861년 6월에 사망했다.
최양업 (崔良業)
최양업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며 두 번째 사제로 11년 6개월 동안 사목 활동을 한 신부이다.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1837년부터 1842년까지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842년 마카오를 떠나 북만주 소팔가자에 머물렀고, 1844년 페레올 주교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1846년부터 몇 차례 조선 입국을 시도하였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조선에 입국했다. 수년간 광범위한 지역의 사목을 도맡아 하며 순교자 행적 조사, 교리서와 기도서 번역에 힘쓰다 1861년 6월에 사망했다.
현석문은 조선후기 병오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이자 천주교 지도자이다. 서울에서 중인 출신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누나, 아내와 아들이 모두 순교했다. 1830년대 후반 선교 사제들이 조선에 입국하는 데 참여했다. 1839년 박해 이후 다른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 행적인 『기해일기』를 작성하였다. 1844년 말 김대건 부제의 입국과 1845년 프랑스인 선교 사제 입국 과정에 참여했다. 1846년 6월,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신자들과 함께 피신했으나 7월에 체포되었고, 9월 19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현석문 (玄錫文)
현석문은 조선후기 병오박해 당시에 순교한 천주교인이자 천주교 지도자이다. 서울에서 중인 출신의 신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 누나, 아내와 아들이 모두 순교했다. 1830년대 후반 선교 사제들이 조선에 입국하는 데 참여했다. 1839년 박해 이후 다른 신자들과 함께 순교자 행적인 『기해일기』를 작성하였다. 1844년 말 김대건 부제의 입국과 1845년 프랑스인 선교 사제 입국 과정에 참여했다. 1846년 6월, 김대건 신부의 체포 소식을 듣고 신자들과 함께 피신했으나 7월에 체포되었고, 9월 19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고려치명사략(高麗致命史略)은 중국 예수회 심칙관 신부가 샤를르 달레 신부의 Histoire de l'Eglise de Corée(한국천주교회사)를 토대로 한문으로 저술한 천주교서이자 역사서이다. 1900년 의화단 사건 당시 중국 신자들이 조선 신자들을 본받아 끝까지 신앙을 지켜 나가도록 격려하기 위해 편찬됐다. 교회 설립부터 병인박해까지의 조선 천주교 역사를 간명하게 정리한 통사이자 순교자 전기이다. 달레의 책에 없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확인되며, 편찬 과정에서 한중 천주교회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고려치명사략 (高麗致命史略)
고려치명사략(高麗致命史略)은 중국 예수회 심칙관 신부가 샤를르 달레 신부의 Histoire de l'Eglise de Corée(한국천주교회사)를 토대로 한문으로 저술한 천주교서이자 역사서이다. 1900년 의화단 사건 당시 중국 신자들이 조선 신자들을 본받아 끝까지 신앙을 지켜 나가도록 격려하기 위해 편찬됐다. 교회 설립부터 병인박해까지의 조선 천주교 역사를 간명하게 정리한 통사이자 순교자 전기이다. 달레의 책에 없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확인되며, 편찬 과정에서 한중 천주교회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주년첨례광익』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에서 간행한 연중 교회 축일에 대한 해설서이자 신심 서적, 성인 전기이다. 1865년 목판본으로 인쇄된 이후 1884~1885년 활판본으로 간행되었고, 1899년과 1908년에 중간되었으며, 1930년 신판으로 새로 간행되었다. 『성년광익』을 저본으로 삼아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새로운 순서로 편집했으며, 몇 가지 축일을 추가했다. 53명의 성인과 관련된 총 93개 항목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축일 순서대로 배치되지 않고 신자들의 신앙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인들을 선별해 수록했다.
주년첨례광익 (周年瞻禮廣益)
『주년첨례광익』은 조선 후기 천주교회에서 간행한 연중 교회 축일에 대한 해설서이자 신심 서적, 성인 전기이다. 1865년 목판본으로 인쇄된 이후 1884~1885년 활판본으로 간행되었고, 1899년과 1908년에 중간되었으며, 1930년 신판으로 새로 간행되었다. 『성년광익』을 저본으로 삼아 내용의 일부를 발췌해 새로운 순서로 편집했으며, 몇 가지 축일을 추가했다. 53명의 성인과 관련된 총 93개 항목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다. 축일 순서대로 배치되지 않고 신자들의 신앙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인들을 선별해 수록했다.
『치명자전(致命者傳)』은 병인박해와 1878년 박해 때, 서울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 28명의 전기이자 순교자 증언록이다. 순교자 전기는 모두 목격 증언인데, 작성자와 필사 연도는 알 수 없다. 순교자 전기는 정 마르코부터 시작하여 강 마리아로 끝나며, 28명 중 1866년에 2명, 1868년에 12명, 1869년에 6명, 1870년에 5명, 1871년 2명, 1878년에 1명이 순교했다. 거의 유사한 『병인치명사적』 5권과 비교해 보면, 전기의 순서가 일부 바뀌어 있고, 빠지거나 덧붙여진 내용이 있다.
치명자전 (致命者傳)
『치명자전(致命者傳)』은 병인박해와 1878년 박해 때, 서울에서 순교한 천주교 신자 28명의 전기이자 순교자 증언록이다. 순교자 전기는 모두 목격 증언인데, 작성자와 필사 연도는 알 수 없다. 순교자 전기는 정 마르코부터 시작하여 강 마리아로 끝나며, 28명 중 1866년에 2명, 1868년에 12명, 1869년에 6명, 1870년에 5명, 1871년 2명, 1878년에 1명이 순교했다. 거의 유사한 『병인치명사적』 5권과 비교해 보면, 전기의 순서가 일부 바뀌어 있고, 빠지거나 덧붙여진 내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