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명 요한. 본관은 안동(安東). 황해도 수안 출신. 15세 때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으나 관직의 길을 버리고 글방을 세워 아이들을 가르치며 경향 각지의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30세 때 느낀 바 있어 서울의 홍봉주(洪鳳周)를 찾아가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주교 베르뇌(Berneux, S. F.)로부터 세례 받은 뒤 10여 년간 그의 복사로 있으면서 명도회장(明道會長)·전교회장을 겸하여 전국 각지로 돌아다니며 전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로 체포된 홍봉주·남종삼(南鍾三)·베르뇌와 선교사들의 순교광경을 목격한 뒤 신부 드게트(Deguette)와 강원도 산골에 숨어 박해를 모면하고, 그뒤 주교 리델(Ridel, F C.)·블랑(Blanc, M.)·뮈텔(Mutel, G. C. M.) 등 3대에 걸쳐 교회재건에 헌신하였다.
1883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거행된 블랑의 성성식(成聖式)에는 신자대표로 참석하였으며, 귀국길에 중국 상해·난징 등지의 천주교회를 시찰하기도 하였다. 돌아와서는 명동성당 건립에 관여하다가 1901년 70세의 노령으로 경기도 하우현(下牛峴)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내다가 1903년 12월에 죽었다.
저서로는 문답식 교리서인 『소원신종(溯源愼終)』과, 1854년에서 1901년까지 47년 동안 자신의 전교활동을 회고한 『봉교자술(奉敎自述)』, 그리고 『교령요의(敎靈要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