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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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창은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이다. 보통 동과(銅戈)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 등장하여 중원 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함께 전해져서 여러 토착화된 형식들로 변형된다. 중국 랴오닝〔遼寧〕 지역에서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요령식꺾창과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유행했던 한국식꺾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청동 꺾창은 문화권이 바뀌면서 청동 무기가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변용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유물이다.
꺾창 (꺾槍)
꺾창은 나무 자루 끝에 창날을 가로 방향으로 결박하여 상대방을 찍거나 베어 내는 용도로 사용하였던 청동 무기이다. 보통 동과(銅戈)라고 한다. 고대 중국에서 등장하여 중원 문화의 확산 과정에서 함께 전해져서 여러 토착화된 형식들로 변형된다. 중국 랴오닝〔遼寧〕 지역에서 전국시대에 유행했던 요령식꺾창과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유행했던 한국식꺾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청동 꺾창은 문화권이 바뀌면서 청동 무기가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변용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유물이다.
문천남창리유적(文川南昌里遺蹟)은 북한 강원도 문천시 남창리에 있는 널무덤이 단독으로 분포하는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이다. 무덤은 단순 널무덤으로 추정되었고, 한국식의 세형동검과 세형동과가 각 1점씩 수습되었다.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단계 특징을 나타내는 청동 무기들로 보아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 전후 무렵으로 추정되며, 임둔 세력과 관련되는 문천 일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문천 남창리 유적 (文川 南昌里 遺蹟)
문천남창리유적(文川南昌里遺蹟)은 북한 강원도 문천시 남창리에 있는 널무덤이 단독으로 분포하는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이다. 무덤은 단순 널무덤으로 추정되었고, 한국식의 세형동검과 세형동과가 각 1점씩 수습되었다. 세형동검 문화의 발전 단계 특징을 나타내는 청동 무기들로 보아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 전후 무렵으로 추정되며, 임둔 세력과 관련되는 문천 일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경주입실리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입실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유적이다. 1920년 철도공사 과정에서 청동 유물이 다수 발견되어 알려졌다. 유물 수량으로 보아 가까이에 있는 여러 기의 목관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무기류와 의기류, 마구류 등의 청동 유물들이 다수 보이지만, 철기와 토기도 소량 확인된다. 위만조선 또는 낙랑 계통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서북한계 주민들에 의한 문화 전파 또는 진한 정치체의 문화 교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경주 입실리 유적 (慶州 入室里 遺蹟)
경주입실리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입실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유적이다. 1920년 철도공사 과정에서 청동 유물이 다수 발견되어 알려졌다. 유물 수량으로 보아 가까이에 있는 여러 기의 목관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무기류와 의기류, 마구류 등의 청동 유물들이 다수 보이지만, 철기와 토기도 소량 확인된다. 위만조선 또는 낙랑 계통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서북한계 주민들에 의한 문화 전파 또는 진한 정치체의 문화 교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한국식동검은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조립식 구조의 청동단검이다. 검신 하단부가 각이 지며, 등대 마디와 칼허리를 지닌 모양을 띤다. 넓은 범위로는 불완전한 초기 단계의 동검들과 쇠퇴 단계의 직인화된 동검까지 포함된다. 서기전 4~1세기경에 주로 유행하였으나, 남한 지역에는 서기 2세기경까지 잔존한다. 한국식동검은 요령식동검을 계승하면서도 중원식동검과 북방식동검의 일체형 구조와 구별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한반도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면서 발전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식 동검 (韓國式 銅劍)
한국식동검은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조립식 구조의 청동단검이다. 검신 하단부가 각이 지며, 등대 마디와 칼허리를 지닌 모양을 띤다. 넓은 범위로는 불완전한 초기 단계의 동검들과 쇠퇴 단계의 직인화된 동검까지 포함된다. 서기전 4~1세기경에 주로 유행하였으나, 남한 지역에는 서기 2세기경까지 잔존한다. 한국식동검은 요령식동검을 계승하면서도 중원식동검과 북방식동검의 일체형 구조와 구별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한반도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면서 발전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함흥이화동유적(咸興梨花洞遺蹟)은 함경남도 함흥시 이화동에 분포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널무덤 유적이다. 반룡산 남쪽 구릉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널무덤의 바닥에는 판석재의 돌조각이 깔려 있었는데, 유물 출토 양상으로 보아 나무널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식의 청동 무기와 청동 의기는 물론 철기 등이 다수 출토되어 많은 유물들을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임둔이나 부조 세력과 관련되는 함흥 일대 수장급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함흥 이화동 유적 (咸興 梨花洞 遺蹟)
함흥이화동유적(咸興梨花洞遺蹟)은 함경남도 함흥시 이화동에 분포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널무덤 유적이다. 반룡산 남쪽 구릉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널무덤의 바닥에는 판석재의 돌조각이 깔려 있었는데, 유물 출토 양상으로 보아 나무널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식의 청동 무기와 청동 의기는 물론 철기 등이 다수 출토되어 많은 유물들을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임둔이나 부조 세력과 관련되는 함흥 일대 수장급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황주선봉리고분(黃州仙峰里古墳)은 황해북도 황주군 선봉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낙랑군의 무덤이다. 방대형의 봉토가 있는 긴 축 남북 방향의 세장방형 나무널무덤으로 확인되었고, 내부에서 금동관못, 각종 구슬, 동한 시기로 추정되는 말종방울과 오수전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무덤 축조 시기는 서기 1~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낙랑군의 고분 문화가 대동강과 재령강의 주변으로 널리 확산되었음을 보여 준다.
황주 선봉리 고분 (黃州 仙峰里 古墳)
황주선봉리고분(黃州仙峰里古墳)은 황해북도 황주군 선봉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낙랑군의 무덤이다. 방대형의 봉토가 있는 긴 축 남북 방향의 세장방형 나무널무덤으로 확인되었고, 내부에서 금동관못, 각종 구슬, 동한 시기로 추정되는 말종방울과 오수전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무덤 축조 시기는 서기 1~2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낙랑군의 고분 문화가 대동강과 재령강의 주변으로 널리 확산되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