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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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는 문주왕의 아우이자, 동성왕의 아버지이다. 곤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송서(宋書)』, 『일본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461년에는 왜국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 후 내신좌평에 임명되지만, 3개월 만에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곤지의 역할과 동향을 통해 백제계 도왜인의 흔적과 웅진 천도 이후 왕위 계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곤지 (昆支)
곤지는 문주왕의 아우이자, 동성왕의 아버지이다. 곤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송서(宋書)』, 『일본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461년에는 왜국으로 파견되었다가 귀국 후 내신좌평에 임명되지만, 3개월 만에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곤지의 역할과 동향을 통해 백제계 도왜인의 흔적과 웅진 천도 이후 왕위 계승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관미령전투(關彌嶺戰鬪)는 관미령에서 벌어진 백제와 말갈 · 고구려와의 전투이다. 위치에 대해서는 경기도 파주 오두산성, 예성강 중류 남안, 강화 교동도의 화개산성, 강화 하음산성, 황해도 개풍군 백마산 부근으로 보는 설 등이 있으나, 이 중 오두산성으로 보는 설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미령과 관미성은 고구려의 남하로이자 백제 북방의 요충지였고,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관미령전투 (關彌嶺戰鬪)
관미령전투(關彌嶺戰鬪)는 관미령에서 벌어진 백제와 말갈 · 고구려와의 전투이다. 위치에 대해서는 경기도 파주 오두산성, 예성강 중류 남안, 강화 교동도의 화개산성, 강화 하음산성, 황해도 개풍군 백마산 부근으로 보는 설 등이 있으나, 이 중 오두산성으로 보는 설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미령과 관미성은 고구려의 남하로이자 백제 북방의 요충지였고,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군창지(軍倉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군수물자 관련 창고터이다. 군창지가 자리한 곳은 부여부소산성 내부의 가장 높은 지점에 해당한다. 1915년 이곳에서 창고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타다 만 쌀 · 보리 · 콩 등의 찌꺼기가 많이 나왔다. 백제 멸망 당시의 상황을 보여 준 것에 기인하여 '백제군창'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981년과 1982년 다시 발굴이 이루어져 조선시대 초기 창고와 바닥 밑에서 기둥구멍과 연꽃무늬기와 조각 일부가 발견되었다.
군창지 (軍倉址)
군창지(軍倉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군수물자 관련 창고터이다. 군창지가 자리한 곳은 부여부소산성 내부의 가장 높은 지점에 해당한다. 1915년 이곳에서 창고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타다 만 쌀 · 보리 · 콩 등의 찌꺼기가 많이 나왔다. 백제 멸망 당시의 상황을 보여 준 것에 기인하여 '백제군창'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981년과 1982년 다시 발굴이 이루어져 조선시대 초기 창고와 바닥 밑에서 기둥구멍과 연꽃무늬기와 조각 일부가 발견되었다.
백제이경은 삼국시대에 백제 도성의 기능을 한 양성(兩城)이다. 『구당서』 백제전에 왕은 동 ‧ 서 양성에 거주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위치는 사비와 웅진, 익산과 웅진이 언급되고 있다. 반면 사비를 포함시킬 경우 사비와 익산 혹은 사비와 웅진이 거론되기도 한다.
백제이경 (百濟二京)
백제이경은 삼국시대에 백제 도성의 기능을 한 양성(兩城)이다. 『구당서』 백제전에 왕은 동 ‧ 서 양성에 거주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위치는 사비와 웅진, 익산과 웅진이 언급되고 있다. 반면 사비를 포함시킬 경우 사비와 익산 혹은 사비와 웅진이 거론되기도 한다.
부여풍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이며, 백제 부흥군을 이끈 왕자이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복신과 도침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부여풍은 왜에서 귀국하여 백제 부흥군의 왕이 된다. 그러나 부흥군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고,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하자 고구려로 망명한다. 고구려가 패망한 후 당의 포로가 되어 중국 영남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다.
부여풍 (扶餘豊)
부여풍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이며, 백제 부흥군을 이끈 왕자이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복신과 도침을 중심으로 부흥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부여풍은 왜에서 귀국하여 백제 부흥군의 왕이 된다. 그러나 부흥군 내부에 분열이 일어나고, 백강전투에서 나당연합군에 패하자 고구려로 망명한다. 고구려가 패망한 후 당의 포로가 되어 중국 영남 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생사를 알 수 없다.
임류각(臨流閣)은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누각이다. 공산성 동쪽 봉우리 부근에 초석과 '류(流)'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을 임류각지로 추정하고 있다. 임류각은 동성왕 실정의 상징적인 장소로 비추어지고 있으나,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원지로 볼 수 있다.
임류각 (臨流閣)
임류각(臨流閣)은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에 있었던 백제시대의 누각이다. 공산성 동쪽 봉우리 부근에 초석과 '류(流)'와 비슷한 글자가 새겨진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을 임류각지로 추정하고 있다. 임류각은 동성왕 실정의 상징적인 장소로 비추어지고 있으나, 도교적 요소가 가미된 원지로 볼 수 있다.
우견현은 삼국시대, 백제의 지명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운곡리 일대로 비정되며,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일대까지 관할한 것으로 보인다. 금물현과 함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시산군에 속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목우현(目牛縣), 고려시대에는 고구현(高丘縣)이라 불렀다.
우견현 (牛見縣)
우견현은 삼국시대, 백제의 지명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운곡리 일대로 비정되며,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일대까지 관할한 것으로 보인다. 금물현과 함께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일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마시산군에 속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목우현(目牛縣), 고려시대에는 고구현(高丘縣)이라 불렀다.
삼국시대 백제의 군신회의의 수석인 상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사택기루 (沙宅己婁)
삼국시대 백제의 군신회의의 수석인 상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삼국시대 백제의 고위 관등인 하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목윤귀 (木尹貴)
삼국시대 백제의 고위 관등인 하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으로 미륵사 창건을 후원한 관리. 대신.
사택적덕 (沙宅積德)
삼국시대 백제의 좌평으로 미륵사 창건을 후원한 관리. 대신.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왕비.
사택왕후 (沙宅王后)
삼국시대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왕비.
삼국시대 백제 멸망 후 왜국에서 대산하를 역임한 유민. 유신(遺臣).
답본춘초 (答㶱春初)
삼국시대 백제 멸망 후 왜국에서 대산하를 역임한 유민. 유신(遺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