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광복 후 신한국건설과 남녀평등권을 표방하고 발족하여, 1960년까지 존속하였다. 1945년 8월 17일 임영신(任永信)·이은혜(異恩惠)·김선(金善) 등과 각 도의 대표 1명씩이 모여 창당발기인대회를 열고 다음날 서울 안국동에서 강령·정강정책을 결정하였다.
창립 당시 조선여자국민당(朝鮮女子國民黨)이었으나, 정부 수립으로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확정되자, 대한여자국민당으로 개칭하였다. 창당동기는 여운형(呂運亨) 중심의 건국준비위원회의 독주에 대한 반대, 미국유학시절부터 친분이 깊었던 이승만(李承晩)에 대한 지지 및 신여성들의 정치참여에서 비롯되었다. 즉, 정치·경제·사회·외교·국방·문교·교통 등 여러 분야에서의 여성운동을 기초로, 민주적 방식에 의해서 새로운 사회건설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이들이 내건 정강은 여성의 힘을 모아 남성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는 민주사회 건설, 자본주의가 지닌 그릇됨을 배제하고 노동자·여성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건전한 민주경제 확립, 자주독립민족으로 민족문화의 향상으로 세계평화와 인류의 번영을 기약함이었다. 기구로는 위원장 임영신, 부위원장 이은혜·김선, 산하기구로는 총무부·조직선전부·재무사업부·정치부·외사부·노동부가 있었다.
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당 이념에 호응하는 만 20세 이상의 여성으로 당원 2인 이상의 추천에 의하여 감찰위원의 심사가 필요하였고, 당원수는 약 30만 명이었다. 이 당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결정한 신탁통치의 반대운동과 1946년 1월 남북협상을 위한 미소공동회의 항의데모에 앞장섰다.
임영신의 민주의원의장비서·상공부장관, 국회의원 당선, 부통령후보 출마 등 일부 간부가 상당한 활약을 하기도 하였으나, 주로 자유당의 외곽단체로 기능을 하다가 1960년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