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산물 ()

인삼 건조 / 금산
인삼 건조 / 금산
산업
개념
기후나 지형의 영향으로 어떤 고장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물품.
정의
기후나 지형의 영향으로 어떤 고장에서 특별히 생산되는 물품.
개설

좁게는 한 지방의 토산물을 이르지만, 한 나라의 유별난 산물도 이에 포함된다. 특산물의 종류에는 곡물류·과물류·채소류·화초류·조수류(鳥獸類)·어패류(魚貝類)·약재류·광물류·공예품류 등이 있다.

상고시대의 특산물

우리나라 특산물은 일찍부터 외국에 널리 알려졌다. 예(濊)의 단궁(檀弓)·얼룩표범·조랑말[果下馬]·반어(班魚) 따위는 중국인들이 첫 손가락으로 꼽았으며, 부여의 말과 붉은 옥, 담비가죽, 큰 구슬도 유명하였다. 읍루(挹婁)에서는 싸리나무화살·돌활[石砮]·담비가죽 따위를 중국 주나라에 보냈고 비단과 담요 등을 들여왔다.

≪삼국지 三國志≫ 변진전(弁辰傳)의 “이 나라에서 쇠가 생산되어 한(韓)·예·왜(倭) 등이 모두 여기서 쇠를 가져갔으며, 저자에서 물건을 살 때면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쇠를 돈처럼 썼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쇠가 주요 수출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 나라의 비단이나 배처럼 큰 밤, 꼬리 긴 닭, 구슬 등도 외국인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의 특산물

고구려의 단궁도 중국인에게 인기가 높았다. 제련술이 뛰어나서 중국 제나라에 매해 황금 200근과 박은 400근씩 수출까지 하였고, 이를 왜국에도 보냈다. 고구려가 장륙불상(丈六佛像) 주조용으로 605년(영양왕 16) 왜국에 황금 300냥을 희사한 것도 그 한 보기이다.

백제의 제련술 또한 고구려에 뒤지지 않았다. ≪일본서기≫의 “백제에서는 252년(고이왕 19) 구저라는 사람을 통하여 칠지도(七支刀) 한 자루와 칠자경(七子鏡) 한 개를 포함한 여러 가지 선물을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뿐만 아니라 5세기의 무덤에서 나온 백제의 칠지도에는 “백 번이나 단련하여 만든 이 좋은 칼은 백병(모든 군대)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왕에게 줄만하다. 그러므로 백제왕은 왜왕에게 이 칼을 만들어 주니 후세에 길이 전하라.”는 글귀까지 새겨져 있다. 당시 백제에서는 백 번이나 담금질하여 우수한 강철을 생산하였다.

특산물은 외국과의 교역뿐 아니라 한반도의 삼국끼리도 교환하였다. 434년 백제에서 말을 신라에 보내자 신라가 금과 명주로 답례하였다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이 그것이다.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와도 특산물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양서 梁書≫ 신라전의 “이 나라에서는 뽕나무와 삼을 많이 심어 겸포(縑布)를 짠다.”는 기록처럼 삼실과 명주실을 섞어서 짠 겸포는 대외 수출품으로 각광을 받았다. 신라의 견직물은 중국인은 물론 왜인들까지 다투어 손에 넣고자 하였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329년(흘해왕 20)에 1,460필을 왜국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723년(성덕왕 22)과 773년(혜공왕 9)에는 당나라에 가는 사신편에 조하주(朝霞紬)와 어아주(魚牙紬)를, 그리고 869년(경문왕 9)에는 큰꽃무늬어아금(大花魚牙錦), 작은꽃무늬어아금(小花魚牙錦) 각 10필과 조하금 20필, 40새의 희고 가는 모시, 30새의 모시를 각 40필씩 수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고구려·백제·신라의 식료품 가운데 채소류도 중국인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수나라 사신은 고구려에 와서 여러 가지 남새 종자를 얻어갔으며, 특히 부루(상추의 옛말)의 경우 그들이 답례품을 많이 내었기 때문에 이를 ‘천금채’라고 부르기까지 하였다.

≪해동역사 海東繹史≫에 따르면, 고구려사람들은 상추쌈을 먹었고, 또 이것이 중국에까지 퍼져나갔다고 한다. 발해의 특산물로는 태백산의 토끼, 부여의 사슴이 널리 알려졌고, 중국이나 일본과의 교역에 큰 몫을 차지하였다.

고려시대의 특산물

고려의 특산물에 대하여는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1123년(인종 1)에 왔다가 적어 놓은 ≪고려도경≫에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 있다. 그는 “이 나라는 산을 의지하고 바다를 굽어보며 땅은 투박하고 돌이 많다. 그러나 곡식의 종류와 길쌈의 이(利)와 소와 양의 축산이 뛰어나고 여러 가지 해물 맛이 좋다.”고 하였다.

또한 광주(廣州)·양주(楊州), 그리고 영주(永州)의 큰 소나무, 나주의 백부자(白附子)와 황칠(黃漆), 평안북도 맹산(孟山)의 송연묵(松煙墨) 따위를 들고 나서 비단·모직물·인삼·복령(茯苓)·유황·구리·더덕·나전(螺鈿)·종이·밤·개암·비자 등을 특산물로 손꼽았다. 이 책에는 이 밖에 미꾸라지·전복·여러 가지 조개·새우·굴·미역·다시마 등의 해산물 이름도 보인다.

한편 ≪고려사≫에는 미역과 말린 물고기 및 절인 물고기를 원나라에 수출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조선 초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이나 ≪세종실록≫ 지리지에 소개된 수십 가지의 물고기도 이미 고려시대에 먹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음식 가운데 원나라에 전파된 것에 유밀과(油蜜果)가 있다. 이것은 밀가루나 쌀가루를 꿀에 반죽하여 기름에 튀긴 것으로 고려의 대표적 별식의 하나였는데, 원나라 사람들도 이를 ‘고려떡’이라 하여 즐겨 먹었다.

송연묵은 맹산 외에 순천과 영변도 명산지로 알려졌으며 외국에 수출까지 하였다. 이 가운데 맹산의 생산량이 가장 많아서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에 따르면, 단 두 달 동안에 5,000자루를 만든 일도 있다고 한다.

왕골을 원료로 한 돗자리와 방석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많이 나왔는데, 특히 안동이 대표적 산지였다. 이것은 중국과 일본에도 수출되었으며, 저들은 이를 ‘용수석(龍鬚席)’이라고 불렀다. ≪고려사≫에 따르면, 전주는 종이의 명산지로 유명하였고, 특히 명표지(名表紙)는 질이 우수하여 외국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었다고 한다.

이 밖에 고려에서 생산된 백추지(白錘紙)·견지(繭紙)·청지(靑紙)·아청지(鴉靑紙) 가운데 견지는 마치 누에고치실로 만든 것처럼 희고 질기며 고상한 품위를 지녀서 중국인들은 일등품으로 쳤다.

삼국에 이어 고려에서도 직조를 국가적 사업으로 장려하여 여러 가지 특산물이 나왔으며, 서긍도 ≪고려도경≫에서 “문라(紋羅)·화릉(花綾)과 같은 비단을 잘 짜며 질긴 실로 낳은 비단과 모직천도 질이 좋다.”고 극찬하였다.

≪고려사≫ 열전 최항전(崔恒傳)에 따르면 이들의 명산지와 산물은 청주의 누에고치로 만든 풋솜, 안동의 명주실, 경산의 황마포(黃麻布), 해양의 백저포, 경주의 능라(綾羅)와 가는 베, 광주의 모시, 의성의 능라와 가는 베 등이다. 고려의 직조기술 가운데 모시 짜는 법이 매우 특출하여 꽃무늬를 넣는 정교한 기술이 창안되었고, ‘매미의 날개처럼 가늘게’ 짜기도 하여 외국인들이 감탄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공부(貢賦)라 하여 지방의 토산물을 세금으로 바치는 제도가 있었는데, 문종 때에 이르러 해마다 정기적으로 바치는 상공(常貢)과 특산물을 별도로 바치는 별공(別貢)으로 크게 구분하였다.

상공은 쌀이나 베로 대신할 수 있었지만, 별공은 반드시 현물로 바쳐야만 하였기 때문에 관리들의 협잡이 심하고 중간착취 또한 과도하여 원성이 높았다.

조선시대의 특산물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특산물의 가짓수는 더욱 늘어나고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조선 초기의 특산물 내용을 엿볼 수 있는 문헌으로는 1454년에 간행된 ≪세종실록≫ 지리지와 이보다 30여년 뒤에 나온 ≪동국여지승람≫, 그리고 이 책을 깁고 보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들 수 있다.

이 세 책에 실린 산물을 지역별로 보면 경기도 359가지, 충청도 560가지, 경상도 933가지, 전라도 914가지, 황해도 279가지, 강원도 502가지, 함경도 658가지, 평안도 541가지로, 산물의 총수가 4,746가지에 이르나 이 가운데는 중복된 것이 상당히 있다.

각도의 지방 가운데 20종 이상의 산물이 나는 지방과 산물 수를 보면, 경기도의 수원부(27)·남양부(32)·인천부(35)·안산군(31)·통진현(21), 충청도의 단양군(21)·홍주목(31)·서천군(28)·서산군(25)·태안군(25)·남포현(22)·결성현(22)·보령현(21), 경상도의 경주부(28)·울산군(35)·동래현(25)·영일현(22)·기장현(20)·영해부(22)·진주목(25)·곤양군(25)·남해현(25)·사천현(23)·하동현(26)·김해부(25)·창원부(21)·거제현(27)·고성현(27)·웅천현(26). 그리고 전라도의 나주목(21)·영암군(24)·함평현(24)·장흥부(29)·진도군(20)·강진현(32)·해남현(30)·제주목(67)·무주현(23)·순천부(28)·낙안군(20)·보성군(29)·광양현(30)·흥양현(25), 황해도의 해주목(30)·강평현(20), 강원도의 강릉부(37)·삼척부(32)·양양부(29)·평해군(28)·간성군(26)·고성군(30)·통천군(22)·울진현(31)·흡합현(21)·정선군(21)·평창군(20). 또한 함경도의 함흥부(42)·영흥부(34)·정평부(32)·안변부(37)·덕원부(34)·문천군(32)·북청부(43)·단천군(38)·이성현(36)·홍원현(32)·경성부(36)·길성현(43)·명천현(37)·경원부(23)·회령부(20)·경흥부(26)·부령부(35), 평안도의 정주목(21)·철산군(24)·용천군(20)·선천군(23)·곽산군(20) 등이다.

조선 초기에 모시·베·무명·명주 등을 짜는 길쌈은 더욱 성행하였고, 그에 따라 여러 곳에 생산중심지가 이루어졌다. 이 가운데 유명한 것은 충청도 임천과 한산의 모시, 의성·예안·안동의 무명, 함경도의 베, 황해도와 평안도 및 함경도의 명주실과 명주 등이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모시의 명산지는 충청도의 임천·한산·서천·남포·비인·정산·홍산·석성·부여·서산·해미·청양 등지였고, 이들 중 임천지방의 모시가 뛰어났다.

≪세종실록≫ 지리지 임천조에는 “주민들이 모두 모시를 심어 큰 이득을 얻는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전통은 꾸준히 계승되어 조선 후기에는 한산·임천·비인·서천·남포·정산·부여 등지가 ‘저산 7읍’의 명성을 얻기에 이른다.

목화재배가 불가능한 북한지방에서는 베 생산이 활발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평안도는 42개 군현 가운데 39개 고장에서, 황해도는 24개 군현 가운데 14개 고장에서, 그리고 함경도에서는 22개 군현 모두가 베를 짜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북지방에서는 명주와 명주실도 많이 나왔다. 황해도의 24개 군현 가운데 15개 고장이 유명산지로, 이 중에도 서흥·봉산·안악·곡산·수안·신은·재령·장연·풍천 등지가 유명하였다 그리고 평안도의 41개 군현 모두가 이의 생산지였으며, 함경도에서는 함흥·영흥·정평·고원·안변·덕원·문천·이원·홍원·북청·단천·길주·명천 등지가 손꼽혔다.

한편 삼남지방에서는 견직업과 마직업이 번성하였으며, 경상도의 의성, 전라도의 태인, 충청도의 청풍에 정부가 잠실을 설치, 생산을 도왔다. ‘남면북포(南綿北布)’니 ‘남면북사(南綿北絲)’니 하는 말은 이러한 산물의 양태를 이르는 것이다.

무명의 대량생산에 따라 종래의 베 대신 무명이 현물화폐로 유통되기에 이른 것도 조선 초기에 나타난 큰 변화의 하나라고 하겠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면화의 주요 생산지는 충청도의 임천, 경상도의 대구·영천·하양·상주·성주·개평·진주·곤양·하동·진성·의령, 전라도의 전주·금구·정읍·태인·고산·나주·해진·무장·함평·무안·고창·흥덕·장성·남원·순창·용담·곡성·광양·장흥·담양·순천·무진·보성·낙안·용성·창평·화순·동복·옥과·진원 등이다. 종이는 서울의 세검동과 전라도의 전주 및 남원이 대표적 산지였다.

특히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전라도에는 20여 종의 고급지가 생산되었고, 그 가운데에도 표전지(表箋紙)·주본지(主本紙)·부본지(副本紙)·자문지(咨文紙)·서계지(書契紙)·표지(表紙)·도련지(搗練紙)·백주지(白奏紙)·유둔지(油芚紙)·세화지(歲畵紙)·안지(眼紙) 따위는 전주와 남원에서만 나왔다고 한다.

왕골을 주원료로 하는 자리 생산의 중심지는 안동·상주·성주·영천(榮泉)·영천(永泉)·선산·예천 등지였다. 이들 지역에서는 국내용인 각종 만화석(滿花席)·별문상석(鼈紋祥席)·점석(簟席)·상문점석(祥紋簟席)·백문석(白紋席)·초석(草席) 외에 수출용으로 황화석(黃花席)·채화석(彩花席)·만화석·만화침석(滿花寢席)·염석(簾席)·초석 등의 고급제품도 생산되었다.

전라도의 나주와 무진은 소반을 비롯한 목공품의 산지로 손꼽혔다. 특히 나주소반의 명성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경상도의 양산은 대를 원료로 하는 죽세공품의 명산지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경상도양산군 풍속조에는 “집집의 남녀 모두가 대로 각종 용구를 만들어 다른 물건과 바꾸었으며, 조세의 공물도 이것으로 바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무기나 농기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용구를 만드는 철도 많이 생산되었다. 사철(砂鐵)의 생산지로는 경상도의 경주·울산·안동·합천·용궁·김해·창원·산음과 함경도의 길주·경성 등지가 유명하다.

한편 석철(石鐵)은 평안도의 개천, 함경도의 홍원·북청·운산·이성·단천·길주·경성, 황해도의 재령·우봉·은율·장연, 강원도의 양양·홍천·금성 등지를 손꼽았는데, 개천쇠의 품질이 제일 좋았다.

조선 중기의 특산물 상황은 서명응(徐明膺)의 ≪고사신서 攷事新書≫와 그의 손자인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를 통하여 엿볼 수 있다. 이 두 책에 실린 각 도별 산출물품의 내역은 경기도 191가지, 충청도 392가지, 경상도 629가지, 전라도 634가지, 황해도 219가지, 강원도 380가지, 함경도 498가지, 평안도 347가지로, 총 산물 수는 3,290가지로 이 중 중복된 것이 상당히 있다.

다음은 10가지 이상의 산물이 나는 고장과 산물 수이다.

경기도의 한양(13)·장단(10)·영평(11), 충청도의 충주(14)·청주(14)·제천(12)·청풍(20)·영동(10)·영춘(13)·단양(19)·연산 (14)·은진(13), 경상도의 풍기(10)·영주(10)·상주(14)·예천(13)·예안(12)·안동(14)·청송(11)·대구(15)·영천(15)·초계(11)·경산(10)·거창(11)·합천(13)·청도(12)·안의 (11)·경주(15)·의령(11)·함안(13)·밀양(19)·언양(10)·하동(10)·산청(11)·진주(19)·울산(15)·김해(11)·단성(11)·사천(10)·양산(10)·고성(10)·동래(10)·거제(11) 등이다.

그리고 전라도의 함열(10)·진산(10)·고산(10)·부안(10)·임실(16)·고부(10)·남원(16)·담양(10)·곡성(11)·운봉(11)·광주(12)·동복(13)·나주(13)·구례(17)·함평(14)·낙안(12)·순천(15)·광양(14)·보성(15)·강진(20)·장흥(14)·흥양(14)·해남(15)·제주(47), 황해도의 평산(14)·서흥(16)·해주(12)·봉산(15)·곡산(14)·수안(16)·황주(14)·안악(11)·풍천(13)·장연(11) 등이다.

또한 강원도의 철원(10)·춘천(15)·김화(16)·안협(14)·횡성(14)·낭천(14)·홍천(14)·원주(12)·평강(16)·금성(15)·이천(16)·평창(20)·양구(11)·인제(13)·회양(19)·영월(17)·정선(21)·통천(10)·고성(17)·강릉(22)·양양(17)·삼척(19)·울진(17)·평해(11), 평안도의 평양(10)·삼등(10)·은산(17)·순천(15)·성천(13)·안주(13)·맹산(13)·박천(10)·영변(11)·개천(13)·가산(10)·영원(13)·태천(13)·운산(13)·덕천(15)·곽산(10)·구성(16)·양덕(17)·철산(10)·희천(18)·삭주(15)·창성(26)·의주(11)·벽동(24)·주원(18)·강계(23) 등이다.

그리고 함경도의 안변(18)·덕원(18)·문천(14)·고원(14)·영흥(18)·정평(15)·함흥(23)·홍원(11)·북청(25)·이성(14)·단천(24)·갑산(16)·삼수(16)·길주(23)·명천(18)·경성(19)·부령(15)·무산(10) 등이다.

한편, 이수광(李睟光)은 ≪지봉유설≫에서 거창의 감, 보은의 대추, 밀양의 밤, 충주의 수박, 회양의 매송자(梅松子), 안변의 배를 특산물로 들었다.

정약용(丁若鏞)은 ≪목민심서≫에서 강계의 인삼과 담비가죽, 함경도경성 북부의 다리와 삼베, 남평의 부채, 순창의 종이, 담양의 채색상자, 동래의 흡연기구, 경주의 수정, 해주의 먹, 보령의 벼루 등을 특산물로 소개하였다.

고려왕조의 공부제도 문란이 왕조의 멸망을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음을 깨달은 조선 태조는 공부상정도감(貢賦詳定都監)을 설치하고 지방특산물의 통계를 내는 한편, 이의 등급을 매기고 숫자를 정하는 등 공물제도의 정비에 힘썼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도 조선 중기에 이르자 방납(紡納) 등에 의한 폐단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선조 때부터는 대동법(大同法) 시행에 따라 모든 공물을 쌀로 내도록 하였고, 갑오경장 때에는 금납제(金納制)로 개편되었다.

공물보다 일반백성에게 큰 괴로움을 끼친 것은 조선왕조에서만 시행된 진상제도(進上制度)였다. 지방의 토산물을 국왕에게 바치는 진상은 형식만 도에서 맡았으며, 실제로는 각 군현에서 부담하였기 때문에 그 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진상 물품은 국왕의 어선(御膳)을 비롯하여 궁중의 제향(祭享)·빈객·사여(賜與)에 쓰이는 것으로, 각 도의 관찰사와 병사 및 수사가 한 달에 한 번씩(경기도는 매일) 바쳤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가짓수가 점점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 지방의 특산물이 아닌 것도 예사로 포함되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서울에 가서 사서 바치는 수밖에 없었는데, 전에 진상하였던 물품이 담당관청인 사옹원(司饔院)에서 되나오는 일도 많았다.

선조 때의 이이(李珥)는 황해감사였을 때 백성들의 괴로움을 덜어 주기 위하여 진상품 가운데 늙은 노루와 큰 노루를 가리지 말 것이며, 별 맛도 없는 사슴 꼬리와 사슴 혓바닥은 빼고, 또 생물은 아침에 준비하여 저녁에 바치더라도 빛과 맛이 반드시 변하므로 이를 경기도의 건물(乾物)로 바꾸어 진상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상소를 올렸다.

또 정약용도 ≪경세유표≫에서 “무릇 상납하는 물품은 비록 쌀·팥·비단·베 따위라도 오히려 퇴짜를 놓고 뇌물을 요구할까 염려되는데, 하물며 생선·생복(生鰒)·갓끈·관(冠)끈·모피·가죽·약초 등은 크다, 작다, 신선하다, 묵었다 하여 서리들이 마음대로 조종하고 간사한 짓을 행함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라고 하여 비리를 지적하였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진상은 꼬치로 꿰고 인정은 바리로 실린다.”는 말은 진상받는 관원에게 많은 뇌물을 바쳐야 하였던 당시의 정황을 잘 나타내는 속담인 것이다.

조선 후기의 특산물은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직조제품은 경기도 고양의 세면포와 충청도 한산의 모시가 널리 알려졌다.

마직의 명산지로는 두만강연안의 회령·종성·온성·경흥·경원·부령의 여섯 지방이 손꼽혔다. 특히 이 지방 베는 대통이나 밥그릇 안에 넣을만한 실꾸리 하나로 베 한필을 짠다는 뜻에서 ‘동포’ 또는 ‘바리내포’라고 불렀다. 그리고 평안도의 영변은 합사주의 산지로, 성천은 명주의 산지로 이름이 높았다.

제주도의 마죽립(馬竹笠), 정주의 총건(驄巾), 남원과 평강의 설화지(雪花紙), 해주의 유연먹[油烟墨]과 초갑(艸甲) 및 붉은 명주, 개성의 유삼(油衫), 김해의 담배설대, 전주의 얼룩 대, 부산의 담배대통, 남평의 부채, 강화도 교동의 돗자리, 통영의 갓과 나전칠기, 영암의 참빗, 안주의 수동이, 재령의 쇠, 자산과 수안의 금, 평산의 녹반(綠礬)과 쇠, 금성의 유황 등이 널리 알려졌고, 안동·삼척·서산 등지에서는 질이 좋은 나무판자가 생산되었다.

이 밖에 안성의 유기, 정주의 방자, 그리고 평안도의 성천과 희천, 황해도의 수안과 곡산, 함경도의 단천과 영천 등지는 금생산지로 유명하였다.

1815년경에 나온 ≪규합총서 閨閤叢書≫ 동국팔도소산조(東國八道所産條)에는 우리 나라 여러 곳의 특산물이 소개되었다. 음식물 위주로 싣기는 하였지만 조선 후기의 특산물을 살피는 데에 좋은 자료로 생각된다. 이들은 오늘날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거창의 감, 보은의 대추, 밀양의 밤, 충주의 수박, 회양의 잣, 안변의 배, 광주(廣州)의 자기·사기그릇·백당(白糖)·밤엿, 행주의 웅어·위어(葦魚), 안산의 수시(水枾)·조개·게, 교동의 노계(露鷄), 양주의 생밤[生栗], 파주의 게, 남양의 굴·교침해(交浸醢)·송림(松林)·참외, 연평의 조기, 강화의 불수민어·수조기, 삭녕의 신감초·엄파, 수원의 약과, 진위의 닭구이, 송도의 섭산적·밤엿·팥단자·편수, 신창(新昌)의 조홍(早紅), 한산의 섞박지, 당진의 소금, 정선의 꼬치(꿩꼬치산적) 등이 있다.

그리고 안협(安峽)의 꿀, 영춘(永春)의 곰취, 철원의 송이, 연안의 인절미·식혜·연근정과(蓮根正果), 음죽(陰竹)의 팥숭늉, 충주의 개·단월무·청명주(淸明酒), 면천(沔川)의 쌀·피, 강계의 인삼, 강릉의 오디, 울릉도의 복숭아, 인제의 나무독[木瓮 : 김칫독을 이르는듯함.], 용인의 오이김치, 간성의 명태, 신계(新溪)의 문배, 강서의 사과·참외, 박천의 흰죽, 대동강의 동수어(冬秀魚), 의성의 앵두, 전주의 죽력고(竹瀝膏)·연엽찜, 통영의 놋그릇, 능주(綾州)의 작설차·무리심배[無心梨], 금화의 개암, 김제의 능금, 장림(長林)의 산사(山楂) 등이 있다.

또한 금성의 석류화, 해주의 청어, 봉산의 금향배[金香梨]·밀다배[蜜多梨]·이강고(梨薑膏), 평양의 감홍로(甘紅露), 동래의 놋그릇, 고령의 고종시(高宗枾), 풍기의 전시(磚枾), 함양의 고추장, 영양의 해포(蟹脯), 유곡의 홍시, 갑산의 지분자(地盆子)·귀리·산포도·머루·다래, 명천(明川)의 강대구, 희천(熙川)의 참깨, 의주의 이당(飴餹), 함종(咸從)의 피적률(皮荻栗), 나주의 수박, 담양의 죽순, 양평의 개·생강, 양주왕산탄(楊州王山灘)의 은구어(銀口魚), 이원(利原)의 문어, 영흥의 대약과(大藥果), 제주의 감자(柑子)·귤, 울산의 감복(甘鰒) 등이 있다.

그리고 덕평의 놋그릇, 함흥의 산들쭉·오미자, 보령의 크고 작은 조개, 성진(城津)의 곱돌솥·강요주(江瑤珠), 홍원의 농게[紫蟹], 문천(文川)의 굴·해삼, 고원의 연어 및 송어의 어란, 장악원의 족구이, 영회의 청포도, 홍천의 인삼·꿀, 여산의 산호춘(珊瑚春)·약산춘(藥山春), 화순의 단감, 동복(同福)의 인삼, 괴산의 백서외[白西瓜]·솥, 청주의 설야목·초정주(椒井酒) 등이 있다.

또한 동설령의 송이, 순창의 고추장, 광주의 수박·능금, 강진의 감자, 안성의 놋그릇, 지례(知禮)의 호두, 삭주의 술, 제천의 외김치, 순천의 붕어, 월성(月城)의 동경개(꼬리 짧은 개), 공주의 연미전·참외 등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특히 유기제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이전에는 사대부를 비롯한 부유층만 놋그릇을 썼으나, 이 시기에는 보통 농가에서도 서너 개의 놋바리나 놋대접을 사용하게 되어 그 수요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종사하는 수공업자들은 ‘전내기’ 또는 ‘장내기’라 하여 생산품을 저자에 내거나 도매업자에게 넘기기도 하였지만, 관청이나 상인, 그리고 객주를 비롯한 일부 개인의 주문을 받아 만드는 일도 많았다.

이러한 주문생산이 ‘맞춤’으로 이 상품에는 특별한 장식을 베푸는 등 소비자의 기호에 맞도록 제작하였고, 전국의 놋점 가운데 안성 제품이 가장 뛰어나서 마음에 꼭 들어맞는 경우를 ‘안성맞춤’이라고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놋제품은 안성뿐만 아니라 개성·구례·전주, 그리고 황해도 재령군의 상방면과 은산면 일대에서도 많이 생산되었다. 이 밖에 함경도의 함흥·영흥·홍원·정평 등지도 유명하였고, 특히 홍원읍 남문 밖에는 19세기 중엽 ‘놋점거리’라는 마을까지 형성되었다.

광복 이후의 특산물

근래에 이르러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은 대량생산품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고, 특히 명절 등에 남에게 선물을 하는 경우 특산품을 고르는 일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체신부에서는 이에 발맞추어 1986년부터 ‘특산물 우편주문판매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산지가격에 우편 우송료만 덧붙여 파는 것으로 중간유통단계를 없앴기 때문에 현지소득이 높아지는 동시에 소비자도 믿을만한 상품을 비교적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이용자의 수가 날로 늘어나고 다루는 품목 또한 확대되는 것은 이러한 장점 때문이라고 하겠다. 소비자는 우체국의 우편주문판매 접수창구에 가서 물품 내역서를 보고 대금을 지불하면 2, 3일 안에 상품을 배달받게 된다. 체신부에 따르면 1988년도의 총 이용건수는 10만2000여 건으로 금액은 14억5000만 여 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제도의 첫 시행연도인 1986년에는 서산의 어리굴젓 등 8개 품목만을 다루었으나, 3년 사이에 농수산품 78개, 공산품 8개, 인삼 등의 전매품 10개 등 모두 96개 품목 256종의 특산품으로 확대되었다.

농업협동조합중앙회도 1989년부터 전국 1,300여 개 단위농업협동조합을 연결, 70여 종의 특산물을 우편주문판매하고 있다. 1989년 1월 당시 우편 주문이 가능한 지역별 주요특산품을 보면 경기도에는 안성의 유기, 포천의 영지버섯, 여주의 땅콩, 강화의 화문석 등이었다.

강원도에는 속초의 명란·창란젓과 마른 오징어, 동해의 대구포, 거진의 마른 명태, 강릉의 감로감차, 춘천의 국수, 둔내의 원두충, 가평의 잣, 대화의 표고버섯, 봉평의 산더덕 등이었다.

충청도에는 서산의 해옥·어리굴젓, 공주의 영지버섯, 금산의 인삼, 영동의 곶감, 진천의 찹쌀고추장 등이었고, 전라도에는 부안의 김·갑오징어·새우, 남원의 목기, 전주의 태극선·합죽선, 무주의 오미자, 순창의 고추장·장아찌, 담양의 죽세공품, 진도의 구기자, 구례의 차, 여수의 피문어, 완도의 김·돌미역·멸치 따위의 해산물, 송정의 마른 나물, 보성의 녹차 등이었다.

경상도에는 양산의 미역, 밀양의 대추, 안동의 삼베, 하회의 탈, 거창의 덩굴차·곶감차, 함안의 곶감, 쌍계의 작설차, 사천의 쥐포, 안동의 참기름, 울릉도의 오징어 등이었고, 제주도에는 멀구슬·베개·표고·옥돔 등이었다.

1999년 말 현재 각 지역 특산물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경우 농·축산물은 포도·흑염소·참다래·백색고구만·약쑥·벌꿀 등이고, 수산물로는 까나리액젖·꽃게·해삼·가리비·굴·김·바지락 등이 주로 생산되고, 중구의 경우는 쌀·신선버섯·한우·청정 김·포도·된장·싱싱배·태양고추 등이 유명하다. 경기도의 양주군은 느타리버섯·더덕·수경채소·부추 등이 유명하고, 그리고 평택시는 쌀·배·화훼·가물치·붕어액즙·자라·오이·애호박 등이 주로 유명하다.

남양주의 경우는 먹골 배가 유명하며 이 외에 영지버섯·포도·장뇌삼·화훼가 주로 생산된다. 파주시는 배·영지버섯·천마·쌀·산머루·홍견천·장어·가물치·황복·먹숭어·메기 등으로 유명하다. 안성시는 쌀·포도·배·한우·인삼 등이, 이천시는 쌀·도자기·팽이버섯·장류·산수유·복숭아·게걸무·돼지고기·화훼·황기·딸기·도테랑 등이 유명하다.

광주시(廣州市)는 한우600·도자기·산성소주·청정야채 등이, 구리시는 먹골배가, 여주시는 도자기·쌀·땅콩 등이, 연천군은 쌀·밤호박·병배·김치·율무·메주·벌꿀·김치 등이, 용인시는 이수자반상·소릿고을·쌀·오이·상추·한지·순대·크리스탈 퀸 등이, 양평군은 느타리버섯·표고버섯·한우·영지·팽이버섯·꿀·배·산더덕·부추·잣·김치·상추·동충하초·버섯김치·분재·사슴·막걸리·둥굴레·치커리·한과·염소환 등이 유명하다.

강원도의 대표적인 특산물은 영지버섯·인진쑥·오징어·식혜·다시마·설악동충하초하초가 유명하다고 할 수 있으며, 각 지역별 특산물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강릉시는 돌각·돌미역·황태·오징어·젓갈류·한과·진또배기·칡·도라지·다시마·감로차·인진쑥·꿀·솔잎식초 등이고, 삼척시는 장뇌·꿀·마늘·미역·삼베·삼척불술·오갈피 등이 유명하다.

태백시는 당귀·황기·취나물·느타리버섯·흑염소·오리·한우 등이고, 원주시는 복숭아·배·토마토·화훼·옻칠기공예 등이, 양양군은 배·연어·은어·벌꿀·산삼·장뇌·영지버섯·표고버섯·느타리버섯·인진쑥·송이버섯·한우 등이, 양구군은 오이·송이버섯·느타리버섯·표고버섯·쑥·감자·도토리묵·백합·사과·더덕·산채·쌀·메주·한과 등이 유명하다.

영월군은 인진쑥·신령버섯·고추·깨·더덕·쌀·사과·대추·취나물·꿀·칡 등이, 횡성군은 한우·감자·더덕·고추·토마토·양송이·꿀·하향수 등이, 속초시는 동충하초·현미상황·인진쑥·오징어·명태·젓갈 등이, 평창군은 감자·고랭지채소·느타리버섯·황태·맥향·더덕·옥수수·화훼·맥향·산머루·옥수수·양파·토마토·한우·허브·흑염소·송어 등이 유명하다. 정선군은 황기·석공예품·꿀·옥수수·산채·목공예품·영지버섯·인진쑥·대추 등으로 유명하다.

충청북도의 대표적인 특산품은 돗자리·삼베·홍화씨·인진쑥·녹용·영지·감·꿀·쌀·대추·호도·치커리·석공예·수공예·도자기 등이 유명하다. 각 지역의 특산물은 다음과 같다. 단양군은 고추·마늘·사과·수박·대추·약초·느타리버섯·영지버섯·산채·취나물·감자·꿀·신선주 등이, 괴산군은 느타리버섯이, 음성군은 인삼·꽃·담배·신립초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충주시는 상추·느타리버섯·고추·쌀·오이·밤·토마토·복숭아·팽이버섯 등이, 영동군은 감·표고버섯·호두·밤·마늘·포도·배·사과·멜론·수박·꿀·인삼·오징어·화훼·채소·포도 등이, 연기군은 쌀·감자·고추·딸기·오이·복숭아·배·포도·수박등이, 논산시는 딸기·사과·배·포도·멜론·대추·감·깨·돼지·젓갈·고구마·쌀·감자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예산군은 사과·쌀·한과·참붕어·고추·팽이버섯·쪽파·토마토·오이·수박·옹기 등이, 서산시는 마늘·생강·굴젓·쌀·배 등이, 천안시는 거봉포도·멜론·참외·녹두·수수·채소·화훼·팽이버섯·들깨·율무·청풍명월·배·오이·콩·선인장·조·팥·향림풍란·참께·느타리버섯·달걀·한우·돼지·표고버섯·두릅·밤·영지버섯·호두 등이 유명하다.

보령시의 특산물은 머드화장품·벼루·석재·굴·꽃게·김·버섯·포도·취나물·딸기·천일염 등이, 금산군은 인삼·둥글레·당귀·인진쑥·두충·동규자 등이, 부여군은 방울토마토·수박·딸기·미나리·무·오이·토마토·배·사과·청풍명월·양송이·느타리버섯·팽이버섯·장미·밤·취나물·두릅·표고버섯·위어·뱀장어·등잔·담뱃대·은장도·퉁소·회병 등이 유명하다. 서천군은 구기자·고추·방울토마토·참게·표고버섯·느타리버섯·밤·취나물·사과·난·오이·배 등이 유명하다.

전라북도 전주시의 경우 미나리·복숭아·배·장미·호박 등이, 장수군은 오미자·석기·사과·화훼·오이·고추·표고버섯·느타리버섯·고로쇠약수·방울토마토·흑보·꿀 등이, 완주군은 생강·배·감·표고버섯·수박·대추·포도·딸기 등이, 군산시는 대하·멸치액젓·꽃새우·울외·가물치 등이, 정읍시는 고추·쌀·방울토마토·백합·사과·배·포도·흑향미·둥글레·치커리·복분자·느타리버섯·아가리쿠스·유황닭·오리·양송이버섯 등과 가야금·거문고·북·아쟁 등을 생산해 내고 있다.

남원시는 고로쇠약수·한봉·송이·딸기·배·복숭아·복령·도라지·당귀·지초 등이, 순창군은 고추장·한과·자수·오이·매실·팽이버섯·느타리버섯·감·한봉·장미·밤호박·고추 등이, 김제시는 팽이버섯·백합·파프리카·포도·감·화훼·배·딸기·장고·필방·도예 등이, 부안군은 사과·배·감자·딸기·김·꽃새우·꼴두기·건멸치·멸치액젓·까나리액젓·쌀·장미·황석어·어리굴·벤뎅이굴·꼴두기·바지락 등이 유명하다.

전라남도 고흥군은 오이·산수유·고로쇠·지리산나물·작설차·은어·배·단감·방울토마토·밤·노고단 향수·송이버섯·꿀 등이, 고흥군은 유자가, 나주시는 배·신선초·토화젓·꿀·멜론·장어·팽이버섯·방울토마토, 일주반·견족반·사각나주반·다용도꽂이·십장생조각문갑·소서인장 등의 목물, 도자기·모필·동양자수·쪽물·쌀 등이 유명하다.

목포시는 돼지·한우·포도·배·시금치·쌀·가리비·새우젓·김·대하·세발낙지·홍어·분청사기·장어·단감·마늘·양파·참빗·깨·무말랭이·오이·수박·어란·무화과·유자·돌미역·진도개·검정쌀·구기자·홍주·버섯·참다래·녹향주·진향주·송화병과·영지버섯·표고버섯·방울토마토·전복·굴·다시마·흑염소·녹용·멸치 등이, 무안군은 고구마·양파·한우·세발낙지·단감·인삼·마늘·양다래·몽팽요·무안요 등이 유명하다.

보성군은 녹차·고막·쪽파·어성초·방울토마토·배·딸기·참다래·오이·느타리버섯·표고버섯·녹우·논돈·쌀·매실닭·고추 등이, 여수시는 오이·단감·방울토마토·돌산갓김치·쑥·유자·초란·삼지구엽초·해용·쥐치포·깨맛포·명태포·노가리·바다진미·멸치·오징어·문어·굴·우럭·넙치·농어·키조개·개불·새고막·바지락·참고막·갈치·삼치·돌미역 등이 유명하다.

영광군은 굴비·홍화씨·태양고추·새우젓·아랑주·쌀·화훼·포도·토마도 등이, 완도군은 녹용·흑염소·사슴·유자·김·미역·다시마·굴·멸치·전복 등이, 장성군은 담감·사과·배·포도·멜론·복숭아·방울토마토·딸기·수박·참외·오이·화훼·버섯·잔디·전통목공예·국궁화살 등이, 장흥군은 동충하초·표고버섯·참다래·유자·딸기·방울토마토·오이·담감·쌀·은어·바지락·키조개·김·가시파래·영지버섯·매생이·멸치 등이 유명하다.

진도군은 구기자·홍주·돌김·돌미역·멸치·대파·유자·검정쌀·약찹쌀·조청·호박 등이, 참다래·꿀·배추·신령버섯·진향주·녹향주·공예·화원요 등이, 화순군은 복숭아·방울토마토·배·느타리버섯·단감·참외·누에·포도·더덕·파프리카·영지버섯·표고버섯·마포·복청 등이 유명하다.

경상북도 경산시는 포도·메주·대추·아가리쿠스 버섯·포도주·한우 등이, 고령군은 상황버섯·부자·감자·그린포크·참외·수박·쌀·딸기·토마토·낚싯대·한와 등이, 김천시는 포도·자두·양파·감자·참외·방울토마토·배·팽이버섯·메주·토종돼지·과하주·모필장 등이, 봉화군은 고추·대추·수박·사과·산나물·약초·딸기·잡곡·고랭지딸기·메주·닭실한과 등이 유명하다.

상주시는 포도·사과·배·쌀·인삼·오이·홍화씨 등이, 성주군은 수박·참외·사과·토마토·꿀·고추·엿기름 등이, 안동시는 한우·사과·느타리버섯·상황버섯·쌀·안동소주·간고등어·쌀·마·고추 등이, 영덕군은 대게·명태엮거리·돌미역·멸치·메기·은어·송이버섯·배·단감·부추·사과·복숭아·포도·옹기·수석·쌀 등이, 영양군은 고추·더덕·버섯·산나물·천마·사과·잎담배·한우·흑염소·꿀·초화주 등이 유명하다.

영주시는 인삼·마·하수오·약초·버섯·사과·한우·네카란·메주·깨·유과·오정주·포도 등이, 영천시는 포도·사과·복숭아·배·양파·버섯·토마토·오이·화훼·한우·토종돼지·목공예·신라토기 등이, 예천군은 고구마·고추·꿀·참외·건조누분말·동충하초·쌀·땅콩·마늘·느타리버섯·배·사과·상황버섯·양란·영지버섯·표고버섯·호도·옹골진잡곡·쪽파·참깨·참우·토마토·메주 등이 유명하다.

울진군은 송이버섯·취나물·쌀·미역·대게·오징어·참문어·골뱅이·은멸치·수박 등이, 의성군은 마늘·고추·사과·쌀·홍화씨·포도·작약·느타리버섯 등이, 청도군은 복숭아·감·미나리·고추·딸기·팽이버섯·표고버섯 등이, 청도군은 사과·고추·콩·대추·포도·배·채소·오이·취나물·한우·꿀·상황버섯·표고버섯·느타리버섯·청송불로주·꽃돌·천연허브 등이, 포항시는 과메기·오징어·부추·시금치·참깨·표고버섯 등이 유명하다.

경상남도 거제도는 유자·오이·참다래·멜론·돼지·표고버섯·죽순·고로쇠·양파·느타리버섯·영지버섯·파인애플·알로에·멸치·고추 등이, 거창군은 느타리버섯·산골나물·양파·사과·돼지·한우·배추·무·밤·호박·쌀·표고버섯·송이버섯·수박·포도·딸기 등이, 고성군은 쌀·인삼·토마토·다래·호박·단감·멸치·갯장어·한우·사슴·칡소·굴·갯장어·유자·팽이버섯·양란·도자기·수석·화훼·분재 등이 유명하다.

김해시는 쌀·단감·참외·딸기·감자·부추·화훼·도자기 등이, 밀양시는 대추·딸기·들깨·복숭아·미나리·고추·사과·쌀·난·담감·포도·오이·토마토·맥문동·흑염소·전통집장 등이, 사천시는 단감·포도·토마토·마·메주·딸기·콩·고추·호박·배·삼백초·어성초·장미·백합·참다래·다슬기·화어·지취·명태·오징어·대구·붕장어·민속연·도자기 등이 유명하다.

양산시는 박·토마토·딸기·매실·당근·감자·느타리버섯·팽이버섯·쌀·삽량주·방울토마토·선옥죽차·도자기·목공예·박공예 등이, 의령군은 쌀·옥수수·참외·수박·방울토마토·토마토·상추·한우·멧돼지·돼지·꿀·흑염소 등이, 진주시는 오이·딸기·피망·파프리카·고추·수박·토마토·주키니·가지·마·멜론·베·단감·밤·귤·송이버섯·상황버섯·콩·도라지 등이 유명하다.

창녕군은 양파·고추·단감·송이버섯·오이·사과·마늘·고추·토마토·파프리카·느타리버섯·쌀·버섯 등이, 창원시는 단감·포도·참다래·홍합·수박 등이, 통영시는 쌀·검은쌀·기장쌀·검은콩·유자·참다래·대추·은행·호두·땅콩·잣·홍화씨·멸치·참게·까나리·오징어·돌미역·공예품 등이, 함안군은 수박·참외·방울토마토·단감·복숭아·멜론·포도·메주·연·오이 등이 유명하다.

함양군은 한우·돼지·딸기·꿀·쌀·사과·마천석·맥반석·영지버섯·홍화씨·대추·밤·칡·호박·감초·오리·둥글레·산국화·꿀·산머루·인산죽염·흑염소·다슬기·서목태·동충하초 등이, 합천군은 감자·고구마·단감·배·사과·딸기·멜론·방울토마토·수박·참외·오이·느타리버섯·마늘·양파·고추·호박·가지·쌀·화훼·한우·돼지·호박·메주·왕골 등이 유명하다.

제주도 북제주군은 어성초·도야지·고소리·오메기·당유자·꿀·선인장·오미자·옥돔·한치·갈치·전갱이·삼치·한라산소주 등이, 서귀포시는 감귤·표고버섯·꿀·옥돔·유채꽃·갈옷·칠보·망고 등이, 제주시는 백합양란감귤·당근·흑대두·양배추·양파·토마토·찐톳·솔하·성게·넙치·옥돔·꿀·돼지·표고버섯·설록차·어성초·당유자·제주석·선인장·삼백초·궁중채 등이 유명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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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고려도경(高麗圖經)』
『한국식경대전』(이성우, 향문사, 1981)
집필자
김광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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