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맞춤법통일안은 많은 호응을 받아 널리 채택되다가 1948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함에 따라 그 뒤 우리나라 정서법의 법전(法典)이 되었다. 총론 3항, 각론 7장 63항, 부록 2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제정경위
개화기를 맞은 우리나라는 한글을 공용문(公用文)으로 채택하고, 또 학교를 세워 각종 교과서를 한글로 펴내어야 했는데, 통일된 정서법이 없어 다급한 처지가 되었다. 이에 정부는 1907년 학부(學部) 안에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를 설치하여 정서법 통일안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그 결실이 어윤적(魚允迪)·이능화(李能和)·주시경(周時經)·권보상(權輔相)·송기용(宋綺用)·지석영(池錫永)·이민응(李敏應)·윤돈구(尹敦求) 등 8인의 위원이 작성한 「국문연구 國文硏究」였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잃자 국문연구소도 해체되고 「국문연구」도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 뒤 우리나라 정서법을 제정하는 일은 조선총독부의 주관으로 넘어가 일본인 학자와 우리나라 학자가 함께 참여하여 1912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만들어 국민학교 교과서에 적용하여 썼다.
그러다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일제가 무단정치를 문화정치로 바꿈으로써 신문·잡지의 간행 및 집회가 허용되어, 우리나라 어학자들이 학회를 구성하고 정서법 통일안의 제정에 착수하였으니, 그것이 곧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되었다.
조선어학회는 1930년 12월 13일 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할 것을 총회의 결의로 정하고, 그 첫 원안(原案)을 1932년 12월에 작성하였다. 원안작성에 참여한 위원은 권덕규(權悳奎)·김윤경(金允經)·박현식(朴顯植)·신명균(申明均)·이극로(李克魯)·이병기(李秉岐)·이윤재(李允宰)·이희승(李熙昇)·장지영(張志暎)·정열모(鄭烈模)·정인섭(鄭寅燮)·최현배(崔鉉培) 등 12인이었다.
그 뒤 위원은 김선기(金善琪)·이갑(李鉀)·이만규(李萬珪)·이상춘(李常春)·이세정(李世禎)·이탁(李鐸) 등 6인이 증원되어 18인이 되었다. 이들은 1932년 12월 25일부터 1933년 1월 4일까지 개성에서 원안을 심의하여 제1독회(第一讀會)를 마치고 이를 수정위원에게 맡겨 수정안을 만들었다.
이 때 수정위원은 권덕규·김선기·김윤경·신명균·이극로·이윤재·이희승·장지영·정인섭·최현배 등 10인이었다. 이 수정안은 다시 1933년 7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서울 화계사(華溪寺)에서 검토하여 제2독회를 마친 뒤 정리위원 9인(권덕규·김선기·김윤경·신명균·이극로·이윤재·이희승·정인섭·최현배)에게 맡겨져 그 최종안이 마련되었다.
3개년에 걸쳐 125회의 회의를 거듭한 결실이었다.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당시의 한글날은 10월 29일이었음.)을 기하여 이 새로운 안을 세상에 공표하니 이것이 곧 「한글맞춤법통일안」이다.
(2) 수 정
통일안은 그 뒤 여러 차례 조금씩 수정되었다. 제1차수정은 1937년에 있었는데, 이때는 내용보다 1936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공표됨에 따라 통일안에 쓰인 용어와 어례(語例)를 새 표준어로 바꾸는 일이었다.
제2차수정은 1940년에 있었는데, 이 때 제19항의 ‘갖후다·낮후다·늦후다·맞후다’의 사역 형성 접미사 ‘후’를 ‘추’로 고치고 ‘마춤법’도 ‘맞춤법’으로 쓰기로 하였다.
또한, 제29항의 문구를 수정하고 제30항의 ‘사이ㅅ’을 쓰기로 한 것과 부록의 부호를 증보 수정한 것 등이다. 제3차수정은 1946년에 있었는데, 이 때 제10항·48항·61항에 단서를 추가하고 제30항의 ‘사이ㅅ’을 다시 폐지하였으며, 제62·63·64항을 폐지하고 제65항을 제62항으로 보내는 대신 제63항을 신설하였다.
이러한 내용수정 이후에도 1948년 국한혼용문으로 되어 있던 통일안을 한글전용으로 바꾼 한글판을 내었고, 1958년 문법용어를 ‘임자씨·혀옆소리’ 등의 고유어로 바꾼 용어 수정판을 내는 등 부분적인 개정이 계속되었다.
(3) 구성 및 내용
총론은 통일안의 기본적인 강령(綱領)을 밝힌 것으로, ① 표준말은 소리대로 적되 어법(語法)에 맞도록 하고, ② 표준말은 현재 중류사회의 서울말로 하며, ③ 각 단어는 띄어쓰되 토는 그 앞 단어에 붙여 쓴다는 내용이 3항으로 나누어져 서술되어 있다.
각론은 크게 7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장 자모(字母), 제2장 성음(聲音), 제3장 문법에 관한 것, 제4장 한자어, 제5장 준말, 제6장 외래어표기, 제7장 띄어쓰기로 되어 있고, 부록은 부록1 표준어, 부록2 부호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정서법의 문제들을 골고루 다 망라하였다.
제1장 자모에서는 자모의 순서와 명칭, 제2장 성음에 관한 것에서는 ‘어깨’ 등의 된소리 표기, ‘얼른’ 등의 ‘ㄹ’음 표기, ‘같이·닫히다’ 등의 구개음화 표기, ‘빗나가다·첫’ 등의 ‘ㅅ’ 받침의 표기를 다루었다.
제3장 문법에 관한 것은 총 8절 26항에 걸치는 통일안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인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른바 원형을 밝혀 적느냐 않느냐하는 문제를 다룬 내용이다.
체언과 조사, 어간과 어미를 구분하여 표기하고, 피동형과 사역형을 ‘먹이다·얽히다’처럼 역시 원형을 밝혀 적도록 하였으며, 그때까지 쓰지 않던 받침들인 ㄷ, ㅈ, ㅊ, ㅋ, ㅌ, ㅍ, ㅎ, ㄲ, ㄳ, ㄵ, ㄶ, ㄾ, ㄿ, ㅀ, ᅟᅠᇚ, ㅄ, ㅆ을 모두 쓰게 하여, 종래보다 형태소(形態素)의 기본형을 밝혀 적는 원칙을 많이 취하였다.
그러나 변칙용언의 변칙활용은 ‘나으니·고우니·무니·들으니’처럼 원형을 밝혀 적지 않게 하였으며, 파생어의 경우는 ‘깊이·손잡이·많이·웃음·절뚝발이·낱낱이·움직이다’처럼 ‘음’이나 ‘이’가 결합된 것은 어원을 밝혀 적고, 그렇지 않은 것은 ‘마개·무덥·너무·모가지·지붕·거멓다·우습다·미덥다’처럼 원형을 밝혀 적지 않도록 하였는데, 다만 의성어(擬聲語)·의태어(擬態語)인 ‘개구리·얼루기·떠버리’ 등이나 ‘하다’를 결합시키지 못하는 어근(語根)에서 온 ‘동그라미·반드시(必)·슬며시’ 등은 비록 ‘이’가 결합되더라도 원형을 밝혀 적지 않도록 하였다.
두 단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복합어는 두 단어의 원형을 그대로 적는 원칙을 세웠으나, 어원이 불분명한 ‘며칠·이틀’ 등이나 ‘ㄹ’받침이 떨어지는 ‘소나무·부삽’ 등은 소리나는 대로 적도록 하였으며, 두 단어 사이에 ‘ㅅ·ㅂ’을 넣어 ‘냇가·콧등·댓잎·뒷일·좁쌀·멥쌀’로 적는 규정과 ‘ㅎ’이 나는 것을 ‘수캐·암탉’으로 적는 규정도 아울러 두었다.
제4장 한자어에서는 종래 써오던 역사적 표기법인 ‘ᄌᆞ녀(子女)·ᄆᆡ일(每日), 샤회(社會), 긔챠(汽車)’ 등의 ‘·, ㅢ’ 및 치찰음 다음의 ‘ㅑ, ㅕ, ㅛ’ 등을 버리도록 한 규정, ‘녀자(女子)·료리(料理)·락원(樂園)’ 등의 어두(語頭) ‘ㄹ’을 쓰지 않도록 한 규정, ‘디구(地球)·텬디(天地)’ 등 구개음화 이전의 형태를 ‘지구·천지’ 등으로 바꾸어 쓰게 한 규정, 기타 속음(俗音)을 인정하는 규정 등을 다루었다.
제5장 준말〔略語〕에서는 ‘나는→난, 가지고→갖고, 무엇을→무얼, 고프어→고파, 쓰이다→씌다, 흔하다→흔ㅎ다(또는 흖다)’와 같이 줄어드는 말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었다. 제6장 외래어표기에서는 외래어표기에 새 글자나 부호를 쓰지 말고 표음주의를 취하라는 규정만 두고 예는 들지 않았다.
제7장 띄어쓰기에는 총론 3항을 되풀이하고 수(數)를 십진법으로 적고 복합고유명사는 단어단위로 띄어쓰라는 등의 몇 가지 규정을 두었다. 부록1의 표준말은 본문에서 다룰 정서법에 관한 규정인데, 왜 표준말이라는 이름 밑에 부록에서 따로 다루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규정들이다.
제2항의 ‘너비·소댕·무직하다’ 등에 대한 규정은 제4장 제6절쯤에서 다룰 성질의 것이며, 더구나 제5항의 ‘꾸준히·똑똑히·기어이·큼직이’ 등 ‘히’와 ‘이’에 대한 규정은 제4장 제6절 제21항과 중복되는 내용인 것이 그러하다. 부록2 부호에는 구두점(句讀點)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장부호의 모양과 용법을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