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2월 20일부터 그해 3월 7일까지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연재, 발표되었다.
거부(車夫) 즉 어떤 무식한 인력거꾼의 일상생활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세태를 암시적으로 풍자한 문답 형식의 연작단편소설이다. 줄거리 가운데서 정부조직에 대한 법부(法部)의 견해를 피력하는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정부를 짠다(조직) 하게 드면(되면) 각 대신을 가리어 학문과 지능이 없는 자는 면관(免官)하고, 지식이 유여(有餘)하여 능히 국사를 도울 만한 자로 의정대신(議政大臣) 이하 각부 대신의 직임을 맡겨, 우으로(위로) 황상(皇上) 폐하에 성충을 기울이며 아래로 제 관리를 통솔하여 정치와 법률을 받게 하며, 지방관리를 택차(擇差)하여 도탄에 든 생령을 무휼(撫恤)하며 구제하여 나라의 근본을 굳게 함이니, 그 심원한 계교와 중대한 책임을 어찌 입으로 다 말하리오.”
이와 같이 하면서 계몽적인 설득 속에 우국지정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정책인 통감제도(統監制度)에 대하여는 “우리나라에도 통감(通鑑)이 없을 것이 아니어든, 하필 일본서 가져올 것 무엇인가. 우리나라에 만일 통감이 없게 드면(없다면) 사략(史略)이라도 무방하고, 소학·대학·맹자·중용이 허다한데, 그것 저것 불계(不計)하고 일본 통감이 적당하단 말인가.” 식으로 일본의 통감정치에 의한 식민지 정책을 비판한다.
이러한 비난은 항일적인 일면을 나타내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이 무식을 가장한 채 국내 정치인의 친일성, 신식 화폐제도 실시로 인한 사회 혼란, 통감보호정치에 대한 한탄 등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끝 부분에서 이러한 어려운 시국을 이겨나가려면 자탄하지 말고, 선척(船隻)과 사다리를 미리미리 준비하자는 노래로 끝난다.
이 작품은 올바른 정부조직이란 ‘나라의 근본을 굳게 하고 도탄에 든 백성을 무휼’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일본의 통감정치에 의한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등 계몽적인 설득과 우국지정이 충만한 작품으로서, 국권상실 직전까지도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던 『대한매일신보』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물론, 단편적인 시국 이야기의 나열에 그쳐 소설적인 짜임새는 약하지만, 언어착각에 의한 전개방법으로 우매한 계층에 대한 계몽성을 고취하였다.
「시사문답」·「소경과 앉은뱅이 문답」과 더불어 투철한 민족의식적 주제 및 풍자토론·시사문답이라는 서술양식의 시도를 보인 점 등, 개화기 문학의 한 유형을 형성하는 작품으로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