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대(鏡臺)는 몸을 단장하고 치장하는 데 필요한 화장품, 화장 도구, 빗, 비녀와 같은 장신구 등을 보관하던 소형의 목가구이다. 여성들은 주로 화장을 위해, 남성들은 머리와 상투를 틀기 위해 사용하였다.
원래 거울, 화장도구, 머리 손질 도구 등을 넣어 보관하던 상자 형태의 경렴(鏡奩)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후기 유리 거울이 유입되면서 빗접 위에 거울을 부착하여 경대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경대의 구조는 윗면 뚜껑에 경첩을 붙여 꺾어 세울 수 있게 하고 그 안에 거울을 달아 얼굴을 비춰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사용 후 접으면 거울이 안으로 들어가 작은 함처럼 보인다. 하단에는 여닫이문이 있거나 작은 서랍이 달려 있어 수납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조선시대 아담한 실내 공간과 온돌 좌식 생활에 맞게 규격이 작고 이동이 용이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섬용지(膽用志)」에는 조선시대 경대의 형태와 기능에 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부녀자의 화장 도구를 보관하는 그릇으로 연갑(硯匣)처럼 여닫는 뚜껑에 거울을 달기 때문에 경대라 하였다. 몸체에 23개의 서랍이 있고 그 앞에 문갑(文匣)처럼 선문(扇門)을 달고, 분지 유납(粉脂油蠟)과 같은 기름, 향이 나는 기물들, 화장 도구로 사용하던 작은 병(甁), 합(盒) 등을 보관한다는 서술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성별, 신분에 따라 다양한 경대를 사용하였다. 색채가 화려하고 금구 장식이 많은 것부터 나무의 재질을 살린 소박한 것까지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화각(華角)이나 나전(螺鈿)으로 장식하여 만든 화각 경대와 나전 경대, 흑칠(黑漆)이나 주칠(朱漆) 위에 장석으로 꾸민 흑칠 경대, 주칠 경대 등 장식한 재료에 따라 경대의 명칭도 여러 가지이다.
조선 후기 풍속화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에는 경대 앞에 앉아 화장 도구로 치장하는 여성의 모습, 경대를 파는 상점 등을 볼 수 있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김준근(金俊根)의 「기산풍속도(箕山風俗圖)」에도 여성뿐 아니라 남성이 경대 앞에 앉아 머리를 정리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 그림들은 18~19세기 생활용 가구로 경대를 널리 사용하던 조선시대의 일상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