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경 ()

정문경
정문경
공예
유물
문화재
청동기시대 후기 또는 초기 철기시대에 제작된 청동제 거울.
이칭
이칭
잔무늬거울,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보(1971년 12월 21일 지정)
소재지
서울 동작구 상도로 369, 한국기독교박물관 (상도동,숭실대학교)
정의
청동기시대 후기 또는 초기 철기시대에 제작된 청동제 거울.
개설

1971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문경(精文鏡, 잔무늬거울)은 복잡한 기하학 무늬를 거울 뒷면에 정교하게 표현한 거울이다. 손잡이가 여러 개 달려 있어 다뉴세문경(多鈕細文鏡)이라고도 한다.

내용

정문경은 지름이 21.2㎝로 2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다. 무늬는 여러 개의 선으로 채워진 삼각형의 집선문(集線文)을 기본으로 정교하게 새긴 것이 특징이다. 무늬는 제일 바깥쪽의 외구(外區), 가운데 중구(中區), 안쪽의 내구(內區)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외구에는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을 세로로 배치하였고, 그 사이 사이에 네 쌍의 동심원을 두었다. 내구는 십자가 형태로 구획된 공간 안에 삼각집선문을 두었고, 그 위로 두 개의 손잡이를 약간 위쪽에 배치하였다. 무늬가 없는 부분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삼각집선문은 다른 청동기 유물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무늬이다. 빛이 발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반사 기능과 함께 의식용 도구로 옷에 매달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적으로 거울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구리와 주석의 비율이 거의 7 : 3으로 주석 함유량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로 인해 거울은 은백색에 가깝고, 반사율도 높아 사물을 비추는 데 매우 적합하다. 또한 거울 뒷면을 장식한 기하학 무늬는 현재의 제작 기술로도 재현이 어려울 정도로 정밀하다. 당시 최고의 주조 기술을 총동원하여 제작한 것이다. 아직까지 거푸집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섬세한 표현을 위해 돌 대신 고운 점토의 토제 거푸집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충청남도 논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진다. 1973년 국보로 지정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팔주령 1쌍, 간두령(竿頭鈴) 1쌍, 아령 모양의 쌍두령(雙頭鈴) 등과 함께 출토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다뉴경(多鈕鏡)의 형태는 원래 기원전 1000년경, 요하(遼河) 서쪽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었는데 무늬가 거칠고 정교하지 못한 거친무늬거울 즉 조문경(粗文鏡)이 정문경보다 먼저 제작되었다.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의 여러 지역 즉 길림, 연해주, 대동강 유역, 아산만-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여러 유형의 조문경이 제작되었다. 이후 청동기 후기로 넘어와 이와 같은 정문경이 한반도의 고유한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대동강 유역, 금강,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되며 일본 열도에까지 전파되었다.

의의와 평가

현존하는 정문경 중 가장 크고 정교하게 제작된 거울이다. 한국식 동검과 함께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의 고유한 제작 기술과 발전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중국 동북 지방에서 서북한 지역에 전해져 발전해 온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다뉴경과 고조선』(이청규, 단국대학교 출판부, 2015)
『다뉴세문경 종합 조사 연구』(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숭실대학교, 2009)
『문화재대관: 국보─금속 공예』(문화재청 동산문화재과, 2008)
『한국의 청동기 문화』(국립중앙박물관, 단우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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