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장(丹靑匠)은 전통 목조 건축물의 천장, 기둥, 벽과 같은 가구부재(架構部材) 위에 오방색의 기본 색채로 채색을 하고, 문양과 그림을 그리는 기능을 가진 장인이다.
단청은 목조 건축이 발달하면서 목재의 단점을 해결하여 오래 보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단청장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8 솔거조(率居條)에서 볼 수 있다. 솔거는 신라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 때의 화가로 황룡사 벽에 노송(老松)을 그렸는데 후에 그 절의 스님이 단청으로 보수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단청은 권위와 신성함을 드러내야 하는 궁궐, 불교 사찰, 유교 사원 등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발전하였다.
조선시대 단청장은 단청 업무만 전문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그림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단청 업무도 함께 도맡았다. 그래서 단청장을 부르는 명칭도 예로부터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먼저 일반인으로서 단청에 종사한 이들로는 화사(畵師)·화원(畵員)·화공(畵工)·가칠장(假漆匠)·도채장(塗彩匠) 등이 있었다. 또한 사찰에 소속된 승려로 화승(畵僧)이 있었다. 특히 불화에 숙달된 승려는 금어(金魚), 단청에만 단순히 종사하던 승려는 어장(魚杖)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궁궐 단청은 주로 토목·영선(營繕: 건축물 따위를 새로 짓거나 수리함)을 관장한 선공감(繕工監) 소속 장인인 경공장(京工匠)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도채공(塗彩工)이라 불렸으며, 궁궐을 비롯하여 관아·객사·역관·사묘·누정 등 관공서의 단청을 전문적으로 하였다. 또한 도화서(圖畫署: 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소속된 화원들도 병조에 파견되어 단청장을 겸하기도 하였다.
한편 사찰에도 승려 단청장이 있었다. 이들은 승려 신분의 화원들로 단청 일을 맡았는데 단청만을 전문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사찰에 필요한 예배용 불화, 불상, 공예 등의 작업에도 함께 참여하였다. 그 중 불화 화원은 최고의 대우를 받았던 반면, 단청에만 종사하던 화원은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불화가 단청보다 숙련된 기술과 묘사 솜씨를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찰의 단청장들은 조선시대 궁궐의 대규모 단청 사업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1647년(인조 25) 중건된 창경궁 저승전(儲承殿)의 단청에는 도화서 화원이던 김명국(金明國)을 책임자로 66명의 승려 단청장이 함께 참여하였고, 1796년(정조 20) 완공된 수원 화성의 단청에서도 단청장 46명 중 승려가 40명을 차지하였다. 궁궐의 규모에 따라 도화서 화원이나 선공감의 도채공보다 오히려 많은 수가 참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