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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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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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개념
옹기 제작 기능 혹은 그러한 기능을 보유한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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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옹기 제작 기능 혹은 그러한 기능을 보유한 장인.
개설

옹기란 흙을 재료로 특정 모양을 빚어 건조시킨 후 불에 구운 그릇이다. 800~900℃ 정도의 저온에서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구운 질그릇, 1200℃ 정도의 고온에서 유약을 발라 구운 오지그릇으로 크게 나뉜다. 조선시대 옹기장(甕器匠)은 중앙 관청에 속한 경공장(京工匠), 지방 관아에 소속된 외공장(外工匠), 그리고 소속 없이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던 사장(私匠)으로 구분된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 옹기의 역사는 일찍이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으나 옹기장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자세히 볼 수 있다. 조선 초기부터 옹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 전국 각지에서 옹기를 생산하였다. 18세기에 저술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옹기를 파는 5일장이 소개되어 있는데 거래되는 옹기의 대부분이 시장 인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관서 지역이 총 324개의 시장 중 94개를 차지하여 가장 많았고, 호남과 영남 지역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일제강점기 이전까지 계속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 「섬용지(贍用志)」에는 도기(陶器) 중에서 가장 크고 많이 쓰이는 것이 옹기이며, 주로 술이나 장을 담거나 김치를 저장할 때 사용하는 그릇으로 송림이 우거진 곳곳에 가마가 있다고 하였다.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백토 위에 석간주 유약을 발라 가마에 번조하는 것을 남방의 오자옹(烏瓷甕)이라 하였고, 크기와 용도에 따라서 듕두리·밧항이·고낙이가 있으며, 오자(烏瓷)가 가장 우수한 것이라고 서술하였다. 옹기를 제작할 때 가마에서 작업하는 인원은 접장 23명, 거내꾼 2명, 질꾼 2명, 뒷일꾼 1~2명 등으로 구성되었다. 접장은 그릇을 만들었고[成形], 거내꾼은 그릇을 말리고[乾燥] 잿물을 입히고[施釉] 문양을 넣는[施文] 일을 하였으며, 질꾼은 작업에 필요한 흙을 조달하고 정제 작업을 하였다. 옹기 제작에 필요한 점토는 영동리 영동·강동마을과 영복리 영풍마을 등지에서 가져다 사용하였다. 보통 한 가마에서 다양한 크기의 물항아리, 동우, 저박지, 오가리, 옹사구, 투가리, 장병, 뚜껑, 중단지, 동우알병, 꼭지옹사구, 약탕 등 다양한 종류의 생활용기들이 생산된다고 하였다.

한편 중앙 관청과 왕실에서 사용한 옹기들은 경공장에서 제작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104명의 옹기장과 각 옹기장 밑에 보조공 2명씩을 두어 총 312명이 예속되어 있었다. 관청에 소속된 옹기장들은 각 부서별로 배치되었는데 공조(工曺) 13명, 봉상시(奉尙寺) 10명, 상의원(尙衣院) 10명, 내자시(內資寺) 8명, 내섬시(內贍寺) 8명, 사도시(司導寺) 8명, 예빈시(禮賓寺) 8명, 내수사(內需司) 7명, 소격서(昭格署) 4명, 사온서(司醞署) 4명, 의영고(義盈庫) 4명, 장원서(掌苑署) 8명, 사포서(司圃署) 10명, 양현고(養賢庫) 2명의 옹기장을 두었다. 옹기장의 인원으로 볼 때 옹기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방에 소속된 외공장은 지방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제작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에는 경상도 초계군(草溪郡)과 진주목(晉州牧) 세 군데 ‘황옹(黃瓮)’을 굽는 가마를 언급한 기록이 있고, 『경국대전』 공전(工典) 외장조(外匠條)에는 충청도 임주(林州, 林川)에 황옹장(黃瓮匠) 한 명이 있다고 하였다. 기록에는 지방 옹기장을 일일이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옹기를 제작하던 도기소가 전국 185곳에 이른다는 『세종실록』을 통해 옹기장의 활동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옹기장들은 흙이나 땔감과 같은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고, 주로 도자기를 굽는 사기장과 함께 협업을 통해 마을을 형성하여 생산의 효율을 높였을 것이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세종실록(世宗實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우리나라 옹기』(송재선, 동문선, 2004)
「옹기장과 제조 기술에 대한 고찰(상)」(정명호, 『역사와 실학』 7,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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