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봉동리 배씨고가 ( )

건축
유적
문화재
20세기 초에 건립된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초가 주택.
이칭
약칭
고성 배씨고가
유적/건물
건축 양식
오막살이집
건립 시기
20세기 초
정면 칸수
안채 2칸, 사랑채 3칸, 헛간채 2.5칸, 잿간채 1칸
측면 칸수
안채 2칸, 사랑채 1.5칸, 헛간채 1칸, 잿간채 1칸
정면 너비
안채 606㎝, 사랑채 656㎝, 헛간채 540㎝, 잿간채 340㎝
측면 길이
안채 462㎝, 사랑채 304㎝, 헛간채 302㎝, 잿간채 280㎝
건물 높이
안채 210㎝, 사랑채 165㎝, 헛간채 140㎝, 잿간채 120㎝
건물 층수
1층
규모
안채 4칸 전후툇집, 사랑채 3칸 홑집, 헛간채 2.5칸 홑집, 잿간채 1칸 홑집
소재지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 봉동1길 67-42(봉동리 곰실마을 1354)
시도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경상남도
종목
경상남도 시도민속문화유산(1994년 7월 4일 지정)
소재지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 봉동1길 67-42(봉동리 곰실마을 1354)
내용 요약

고성 봉동리 배씨고가는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초가 주택이다. 대문의 정면에 있는 본채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며 안방과 부엌, 부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안방 앞뒤로 퇴를 두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조선 후기의 특징이다. 안방과 사랑방 앞의 마루 없는 전퇴는 마루 도입 이전의 원형적 공간을 보여 준다. 사랑방 양옆에는 헛간과 마구간이 있으며, 헛간은 뒷간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사랑채 뒤에 잿간이 있다. 20세기 초에 세워진 배씨고가는 소규모 공간이면서도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는 오막살이집의 사례이다.

정의
20세기 초에 건립된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에 있는 조선 시대의 초가 주택.
건립 경위

1994년 경상남도 민속 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을 당시 배씨고가에 거주하던 배찬열의 말에 의하면, 사랑채는 그의 할아버지 때 세워졌으며, 안채에 4대째 살고 있다고 한다.

형태와 특징

배씨고가(裴氏古家)는 고성군 회화면의 중앙에 위치하는 금봉산(金鳳山)에서 내려온 서쪽 능선의 끝자락에서 동쪽으로 향한 곳에 있다.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지 않은 외딴집으로 작은 하천을 앞쪽에 둔 네 동의 초가집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통 배치 원리에 따라 안채는 동쪽으로 향하며, 사랑채는 마당의 북쪽에 위치해 남쪽으로 향하고, 헛간은 마당의 남쪽에 있어 북쪽을 향한다. 이 세 채가 튼 ㄷ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의 북쪽 뒷면으로 잿간이 있다. 마당의 앞쪽에는 낮은 돌담을 쌓고, 중앙에 대문을 두었다.

안채는 앞면 2칸, 옆면 2칸의 ‘오막살이집’인데, 이는 앞면 3칸 이하의 가옥를 부르는 전통적 용어이다. 앞면에서 보면 왼쪽이 부엌, 오른쪽이 안방이다. 안방의 앞뒤에는 툇칸[退間]을 두었는데, 이러한 구성을 ‘전후(前後) 툇집’이라 한다. 부엌의 뒷면에는 부엌방을 두어 앞뒤로 2칸의 구성인 겹집의 구조를 가진다. 방 쪽과 부엌 쪽의 구성이 다른 복합적 평면 형식은 조선 후기에 발전한 것이다.

안방 앞의 툇간에는 툇마루를 두지 않았는데, 이러한 공간을 일반적으로 ‘흙마루’ 혹은 ‘ 봉당’이라 부른다. 점차 마루를 달아 툇마루를 구성하게 되는데, 이 집은 마루를 설치하기 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안방 문 옆에는 작은 봉창을 두었는데 방의 뒷면에도 봉창이 있어 환기와 채광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부엌에는 아궁이가 2개 있는데, 각각 안방과 부엌방으로 불을 넣었다. 부엌방 아궁이는 솥을 걸지 않는 함실(函室) 아궁이로 만들었다. 배연은 뒷면으로 굴뚝 없이 낮게 하였는데, 이는 연기가 널리 퍼지지 않게 하는 방식으로, 왜구(倭寇)의 출입이 잦았던 남부 해안 지방 배연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부엌의 앞・옆면의 외벽은 기단까지 내어 쌓아 부엌의 공간을 확장하였고, 낮게 쌓은 외벽 위로 이엉의 벽을 만들어 비바람을 막게 하였다. 또한 부엌에서 뒷면으로 갈 수 있는 좁은 통로도 만들어 동선을 편리하게 하였다.

안방과 부엌방의 옆면과 뒷면은 돌과 흙을 섞어 쌓아 찰쌓기로 조성한 ‘담집’인데, 목재의 가공이 쉽지 않았던 민간에서 많이 사용하던 유형이다. 앞면의 기둥과 보의 목재는 모두 원목의 껍질만 벗기고 사용한 원기둥으로, 석간주사괘 없이 세우고 도리를 반 턱으로 결합하여 시공하였다. 가구는 3량에 우진각(隅進閣) 지붕으로 조성하고 황토로 앙토(仰土)를 발라 산자가 노출되지 않도록 서까래연등천장을 마감하였다.

남쪽을 향한 사랑채는 앞면 3칸, 옆면 1칸으로 된 공간으로 중앙 칸에 온돌방을 두고, 동쪽에 마구간, 서쪽에 헛간을 만들었다. 사랑채의 옆면과 뒷면의 외벽은 담벽으로 쌓았다. 사랑방의 앞면도 퇴를 두되 마루는 두지 않았고, 앞면에는 함실 아궁이를 만들었다. 천정은 고비 반자로 막고 동자주(童子柱)를 세운 방의 상부에는 농기구 등을 놔둘 수 있게 하였다.

남쪽의 헛간은 앞면 2칸, 옆면 1칸으로 앞면이 개방된 공간이다. 외벽은 토담으로 쌓았다. 왼쪽 한 칸은 뒷면으로 확장하여 측간을 두었다. 오른쪽 한 칸은 옆면으로 반 칸의 공간을 처마선까지 공간을 확장하였다. 사랑채의 북쪽 뒷면에는 잿간이 있다. 잿간은 벽이 모두 토담으로 된 ‘토담집’으로 문틀 없이 출입구를 개방한 1칸의 구조이다.

의의 및 평가

고성 봉동리 배씨고가는 작은 규모의 오막살이집이지만,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고, 헛간과 잿간을 갖추어 각 채의 공간을 분화하여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구성함으로써 흥미로운 공간 활용을 보여주는 집이다. 또한 간략한 짜임새를 가진 구조와 흙담의 토속적인 구성 등은 민가의 원형을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일진, 『옛집에 담긴 생각』(도서출판 향토, 1996)

논문

조성기, 『한국남부지방의 민가에 관한 연구』(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85)

인터넷 자료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www.heritage.go.kr)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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