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2,916㎡. 절터에는 본래 있던 탑지(塔址) 등의 흔적이 민간 묘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사라졌고, 이후 절터에 대한 구체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사역(寺域)의 내용이 어느 정도는 확인되어 있는 곳이다.
본래 절터 부근은 여러 단의 밭으로 개간되어 있었는데, 탑지를 중심으로 산중턱에 동남향하여 불사(佛寺)를 건립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조사 전 이 남혈사지의 사역은 서혈사지와 마찬가지로 3단의 대지(垈地)로 남아 있었다.
제1단의 범위는 너비 23m이고, 제2단은 20m, 제3단은 30m 너비의 폭으로 남아 있었는데, 제3대지 이후로 편년할 수 있는 각종의 유물이 흩어져 있다. 동쪽에 있는 석굴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동굴로 길이 26m의 크기이며, 굴 내부는 전실과 후실로 구분할 수 있는 구조이다.
북쪽 벽에는 불상을 봉안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축대(築臺)가 있는데, 전하는 말로는 1928년 일본인 가루베(輕部慈恩)가 굴속에 들어가 높이 20여 ㎝의 보살입상을 수습하였다 한다.
남혈사는 서혈사와 마찬가지로 백제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믿어지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탑지는 사역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유구는 탑의 지대석(地臺石)뿐이다.
지대석은 화강암을 정제(精製)하여 만들었는데, 잔존 상태는 전면, 즉 남향쪽에 길이 2m의 석재가 있고, 동쪽 면에도 동일한 재질 및 형태를 지닌 2m길이의 지대석 2매가 있어 탑은 방형의 지대석을 놓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북쪽의 석재는 외견상 보이지 않으며 서쪽에도 남아 있는 석재가 없다.
현존 사역의 범위로 미루어 탑의 크기가 비교적 컸으며, 현존 지표 탑지의 환경으로 미루어 탑지가 약간 측면으로 치우쳐 있어 쌍탑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