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7,219㎡. 수원사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미륵선화(彌勒仙花) 미시랑(未尸郞) 진자사(眞慈師)조에 “웅천주의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를 볼 수 있다.”는 진자의 꿈 내용이 적혀 있어 ‘수원사’가 이미 신라의 진지왕대인 6세기 후반에는 존재하였음을 알게 하여 준다.
1967년에 간단한 시굴조사 결과 탑지(塔址) 등이 확인되고, 이 사지가 위치한 지역을 ‘수원골’이라 부르고 있어 이 사지가 《삼국유사》에 기록된 수원사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사지 일대는 잔디밭으로 정비되어 있는데, 탑의 지대석과 석재 일부가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으며 탑지의 위치, 탑재석 등과 더불어 와편(瓦片)의 퇴적층으로 미루어 보아 건물의 배치는 남향으로 생각된다. 다만 지형은 북쪽이 확 트여 있어 건물이 정상적으로 배치되면 북향이 되어야 하는데, 이 점은 고찰의 대상이 된다.
1991년공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석탑지는 사역(寺域)의 중앙 부분에 있는데 전답의 경작 중 석재가 노출되어 1976년 탑지만을 조사하여 그 위치를 확인하였다. 당시 탑재(塔材)가 지하 40㎝ 지점에 매몰되어 있었는데, 잔존 유구는 지대석과 기단의 면석 일부만이 남아 있었고, 내부는 부식토로 메워져 교란의 흔적이 보였다.
기단 내부에는 석편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었지만 기단부는 황토에 모래를 혼합하여 다졌고, 이 기초부에서 소량의 유물을 수습하였다. 탑의 잔상은 동면에 지대석 2매, 하기단석 3매, 하기단 중석 2매가 있고, 서면에 지대석 3매, 하기단석 3매, 하기단 중석 2매, 남면에 지대석 2매, 하기단석 1매가 남아 있었다. 이로써 탑은 한 변이 3.06m인 방형으로 통일신라기의 탑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