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백제 의자왕의 아우이다. 642년(의자왕 2) 정월에 어머니의 자매 4인과 내좌평(內佐平) 기미(岐味) 그리고 명망있는 자 40여인과 더불어 섬으로 추방되었는데, 곧 일본으로 건너가 아즈미(阿曇山背連)의 집에 머물렀다.
같은 해 4월에는 종자들과 일본 고교쿠왕(皇極王)을 만나고, 며칠 뒤 우네비(畝傍)의 집에서 소가(蘇我) 대신을 만나 좋은 말 한필과 철(鐵) 20정(鋌)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같은해 5월에 교기의 종자 한명이 죽고 바로 다음날 아들 역시 사망하였는데, 두렵고 꺼리는 마음이 있어 아들의 상에는 참례하지 않고, 이틀 뒤 백제인 대정(大井)의 집으로 옮긴 뒤에 단지 사람을 보내어 죽은 아들을 석천(石川)에 장사지냈다.
또, 같은 해 7월에는 백제에서 대좌평(大佐平) 지적(智積) 등의 사신이 와서 일본조정에서 베푼 연회가 끝난 뒤 문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