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 서울 출생.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미술에 재질을 보였으며 영화와 문학에 심취하였다. 1923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영화제작의 기운이 일어나자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이구영(李龜永)이 감독한 「쌍옥루(雙玉淚)」(1925)의 자막을 담당하였고, 이어서 나운규(羅雲奎)가 감독한 「풍운아」(1926)에서는 미술을 담당하였다.
1929년에는 영화감독으로 처음 등장하여 자신이 쓴 시나리오 「종소리」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김연실(金蓮實)·이원용(李源鎔)·이경선(李慶善)이 출연하였다. 이어서 역사극 「방아타령」(1931), 발성영화 「노래 조선(朝鮮)」(1936)을 만들었다.
「노래 조선」은 오케레코드 가수들의 무대실연(舞臺實演)과 희극화한 「춘향전」의 공연을 촬영, 편집하여 음악영화를 시도해본 작품이다. 그는 광복 이후 6·25사변 때까지 중앙극장(中央劇場)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짧은 활동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영화 초창기의 개척자의 한 사람으로 영화의 기틀을 다지는 데 노력한 영화인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