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 측면 1칸의 목조맞배집 건물. 1984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초기의 문신 김수온(金守溫, 1410 ~1481)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김수온은 1441년(세종 23) 문과에 급제한 이후 집현전학사 · 호조판서 · 영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성삼문 · 신숙주 등 당대의 석학들과 문명(文名)을 다투었으며, 《치평요람 治平要覽》 · 《의방유취 醫方類聚》 등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고승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의 동생으로 불경에도 조예가 깊어 《금강경 金剛經》을 번역하고 원각사비명(圓覺寺碑銘) 등을 지었다.
부조묘란 큰 훈공(勳功)이 있는 인물의 신주(神主)를 영구히 모실 수 있는 특권을 국가에서 인정한 사당을 말한다.
본래는 1487년(성종 18) 왕명으로 보은읍 종곡리에 세웠는데, 1664년(현종 5)에 송시열(宋時烈)이 지금 위치로 옮기고 그 기념으로 물푸레나무[揮木]을 식수한 것이 마을 입구에 남아있다. 1981년 보수 · 정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