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헌의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이며, 경기도 김포 출신이다. 후율이란 호는 율곡(栗谷)이이(李珥)의 후학임을 자처하여 지은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헌이 의병을 일으켜 금산전투(錦山戰鬪)에서 순절한 것을 기리기 위해 숙종 때 보은·옥천·청주·회인의 유림들이 세웠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폐지되었다가 1928년에 재건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옆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사당 정면에는 솟을삼문을 세우고 주위로 기와를 얹은 담장을 둘렀다. 사당 바로 옆에 정면 1칸·옆면 1칸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의 교서각(敎書閣)이 있으며, 교서비가 그 안에 있다. 교서비는 1592년(선조 25) 8월에 선조(宣祖)가 조헌에게 내린 교서(敎書)를 후대에 새겨 건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