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충청북도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송상현의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천곡(泉谷)으로 1576년(선조 9)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591년부터 동래부사로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과 더불어 항전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부친에게 “달빛에 비추인 외로운 성은 줄지어 선 군진을 높은 베개로 삼았고, 군신의 의리가 무거움에 부자의 은혜는 오히려 가벼운 듯 하구나[孤城月暉列陣高枕 君臣義重父子恩輕]”라는 글을 남기고 순국하였다.
1610년(광해군 2) 동래에 있던 묘소를 지금 위치로 옮기면서 세웠다.사당은 정면 3칸 · 옆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고, 내부는 통칸 마루방으로 3개의 분합문을 달고 전퇴를 두었으며, ‘忠烈廟(충렬묘)’라고 현판한 소슬삼문을 세우고 석축담장을 둘렀다.
사당 입구에는 홍살문을 세우고 3칸으로 구분된 계단을 이중으로 설치하여 단(壇)을 구분하였다. 사당 아래 마을 입구에는 1595년(선조 28)에 세운 송상현충신정려문(宋象賢忠臣旌閭門)이 있는데, 정면 3칸 ·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다.
사당 뒷산에는 묘소가 있고, 묘소 아래 진입로변에 신도비가 있다. 종가에는 영조 대에 변박계(卞璞繼)가 그린 ‘동래부사순절도’(보물, 1963년 지정)와 천곡수필(泉谷手筆) 등이 보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