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충청북도 시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묘소는 서남향으로 봉분둘레 2,270㎝, 높이 200㎝로 비교적 큰 편이다.
묘비는 1668년(현종 9)에 세운 것으로 보호각 안에 있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썼으며, 제전(題篆)은 김수항(金壽恒)의 글씨이다. 성운(1497∼1579)의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건숙(健叔)이며, 호는 대곡(大谷)이다.
중종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친형 성우(成遇)가 을사사화에 연류되어 화를 당하자 처가였던 종곡마을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조식(曺植) · 서경덕(徐敬德) · 이지함(李之菡) 등과 교우가 두터웠으며,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평생을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은둔과 불교적 취향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저서로는 『대곡집』이 있으며, 보은 상현서원(象賢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