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군수, 첨지중추부사조사오위장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화보(和父)
수곡(修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40년(영조 16)
사망 연도
1818년(순조 18)
본관
안동(安東)
주요 관직
첨지중추부사조사오위장
정의
조선 후기에, 군수, 첨지중추부사조사오위장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화보(和父), 호는 수곡(修谷). 아버지는 김교행(金敎行)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7년(정조 1) 생원이 되고, 1793년에는 향천(鄕薦: 향촌의 추천)을 받아 동몽교관에 올랐다.

그 뒤 벼슬이 군수에 이르렀고, 1810년(순조 10) 사자(嗣子: 대를 이을 왕자)를 시종한 공으로 첨지중추부사조사오위장(僉知中樞府事曹司五衛將)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근엄하고 준수하며 아울러 인덕을 지녔다.

군수로 고을을 다스릴 때는 언제나 명성을 구하지 않고, 오직 유교적 교화만을 숭상하여 인정(仁政)을 베풀기에 노력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학문을 좋아하고 사치를 싫어하였으며, 특히 유학에 심취하여『가례(家禮)』와 『근사록(近思錄)』을 옆에 두고 그 정신구현에 항상 노력하였다.

참고문헌

『순조실록(純祖實錄)』
『노주집(老洲集)』
집필자
김호종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