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영암 출신. 1908년 10월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에 가담, 기군장(起軍將)으로 활약하였다.
11월 하순 능주(綾州)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09년 1월 박민홍(朴民洪) 의병부대의 제일초(第一哨) 십장(什長)이 되어 나주를 주무대로 4월까지 활동하였다.
그 뒤 박사화(朴士化) 의병부대에 들어가 여기서도 제1초 십장에 임명되어 1909년 8월까지 영암과 나주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주로 군자금의 확보와 친일세력을 제거하는데 앞장서서 활동하다가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이 전개되던 1909년 9월 영산포에서 붙잡혀, 그 뒤 1910년 폭동·강도 및 살인죄로 교수형을 당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