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전라남도 영광 출신. 본명은 이순식(李淳植). 자는 영화(英華). 흔히 대극 또는 대국(大局 : 大克의 잘못)으로 불렸다. 일본을 크게 이길 수 있다는 뜻에서 스스로 호칭하였다.
영광의 양반가문이었으나 유학보다는 무술 연마에 뜻을 두어 활쏘기와 말타기를 좋아했으며, 실제로 담략과 용력이 뛰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영광읍을 공격하려 할 때, 읍민들이 이대극을 수성장(守城將)에 추대하자 사양하지 않고 군무를 맡아 활약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어 외교권을 상실하자, 1906년 봄 의병을 조직해 영광읍을 일시 점령하기도 하였다. 1907년 10월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유진(留陣)하고 있던 고창 문수사(文殊寺)로 찾아가 합진하였다. 회맹소의 감기(監器)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무장·법성포·고창·영광 등의 전투에서 앞장 서 일본군경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크고 작은 전투에서 의병의 군사적 열세를 체험한 뒤 기삼연에게 무기의 개량과 군사 훈련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시시각각 조여드는 일제의 침략을 막는 것이 급선무라는 주장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극은 전라우도의 적을 치기로 합의하고, 먼저 영광의 석대산(石臺山)에 들어가 군사훈련과 무기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던 중 기삼연의 피살 소식을 접하였다. 이에 김준(金準)과 의각(犄角)의 형세를 이루기로 약속하고 1908년 봄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편성하였다.
의병대장인 이대극을 비롯해 선봉장 이백겸(李伯謙), 좌익장 김남수(金南洙), 우익장 김관섭(金寬燮), 포장 유자성(庾子成), 후군장 이화삼(李化三), 모사 노화삼(魯化三), 참모 봉계칠(奉啓七)·정진옥(鄭珍玉)·주현숙(周賢叔)·주만옥(朱萬玉) 등이 핵심 구성원을 이루었다.
이후 영광의 불갑산(佛甲山)과 장사산(長沙山)에 근거지를 구축해 영광·무장·고산·함평·고창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이대극 의병부대가 전라남도의 중서부 지역에서 기세를 올리게 되자, 일본군경은 현상금을 걸고 이대극의 체포에 혈안이 되었다. 금품에 눈이 어두운 의병 배반자로 인해 체포되어 1909년 4월에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