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주(坡州). 본명은 염재보(廉在輔). 자는 인서(仁瑞). 흔히 염선달(廉先達)로도 불렸다. 전라남도 보성 출신.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8년 안규홍(安圭洪)이 보성에서 창의하자, 이에 가담해 좌우포장(左右砲將)·좌우익장(左右翼將)·부장(副將)이 되었다.
같은 해 2월경부터 의병장 강용언(姜龍彦) 휘하에서 활동하던 중 강용언이 주민의 재산을 약탈하는 경우가 잦음을 알고 안규홍 등 동료 30여 명과 함께 의병장 강용언을 처단하였다. 그리고 안규홍을 의병장으로 추대, 자신은 부장이 되었다. 일제에 아부하는 일진회원과 천도교도 및 밀정을 제거했으며, 주민을 괴롭히는 부호들을 처단하기도 하였다.
일제의 침략에도 적극 대응해 보성의 파청(坡靑)·대원사(大原寺)·진산(眞山)·복내장(福內場)·해창(海倉)을 비롯한 동복의 운월치(雲月峙), 광양의 망덕(望德), 남평의 거성동(巨聲洞), 강진의 선창(船倉), 승주의 쌍암(雙巖) 전투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주로 보성·순천·고흥·광양·장흥·나주·화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안규홍 의병부대의 군사전략과 활동방향을 짜는 데 크게 기여했고, 주민의 생존권을 수호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1908∼1909년 사이에 안규홍의병부대가 전라남도 중동부지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의병부대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09년 9월에 개시된 이른바 ‘남한폭도대토벌작전(南韓暴徒大討伐作戰)’ 때 붙잡혀 1910년 폭동 및 살인죄로 교수형을 당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