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197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초기 목사 이유인(李有仁)이 건립한 것으로, 1603년(선조 36)에 크게 중수하였고, 1884년(고종 21)에 목사 박규동(朴奎東)이 또다시 중수하였다.
1910년 이후 민족항일기에는 건물의 일부를 개조하여 군청 청사로 사용하다가 그 뒤 1963년과 1976년 두 차례에 걸쳐 완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겹처마집으로, 외일출목(外一出目)의 주심포양식(柱心包樣式)을 이루고 있는데, 정면 중앙 3칸은 네짝의 빗살문을, 양쪽 협간에는 두짝의 빗살문을 달았고, 측면 또한 빗살창문으로 중앙 2칸은 네짝문이고, 양쪽 1칸에는 두짝을 달았다. 본래 이 금성관에는 정문이 있었으나, 1966년나주공원에 위치한 정렬사(旌烈祠)의 정문으로 이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