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고승 소요대사 태능(太能 : 1562∼1649)의 묘탑으로, 대사가 입적한 1649년경(인조 27)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요대사는 호남 담양 사람으로, 부휴당(浮休堂) 선수(善修)에게서 경전을 배우고, 서산대사 휴정(休靜)에게서 선을 닦았으며, 사명유정(四溟惟靜), 편양언기(鞭羊彦機), 정관일선(靜觀一禪) 등과 함께 문파를 형성하여 조선 후기 불교계를 이끈 인물이다. 그의 시문을 엮은 『소요당집(逍遙堂集)』에 행장이 전한다. 이 부도는 200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에서 보물로 승격되었다.
높이는 1.58m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이다. 8각 지대석 위에 다시 8각으로 기단부를 마련하고, 그 측면에는 평면에 거북을 비롯하여 귀면(鬼面), 게, 개구리 등을 조각하고, 그 중간의 각 4면에는 꽃과 구름으로 장식하였다. 기단 윗면은 8판복련(八瓣覆蓮)을 배치하고 그 위에 1단의 받침을 마련하여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塔身部)와 상륜부(相輪部)는 한 돌로 조성되었는데 탑신부는 범종(梵鐘)에서와 같이 상대(上帶)와 하대(下帶)를 갖추고 상대 밑으로는 네 군데의 사다리꼴 유곽(乳廓)을 배치, 아홉개의 유두(乳頭)를 표출하였다. 상대 위로는 두 줄의 횡대를 두르고 구름과 인동문양을 치밀하게 장식하였다. 상대의 천판 부분에는 16판 복련을 장식하여 상륜부를 받고 있다. 상륜부 역시 범종의 형태로서 네 개의 용두(龍頭)와 그 사이에 구름모양의 문양을 베풀고 그 위에다 보주(寶珠)를 올려놓았다.
이 부도는 전체적인 외형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범종의 형태를 모방한 전형적인 석종형부도로 하대석 측면과 탑신에 뱀 · 용 · 거북 · 원숭이 · 개구리 · 게, 귀면 등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부도의 장엄미를 보였다. 탑신 중앙에는 위패형 액자(높이61×폭23cm)를 마련하여 그 안에 ‘逍遙堂(소요당)’이라는 당호를 음각으로 새겼다. 당호를 새긴 좌우 탑신 표면에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하였다.
소요대사 부도는 백양사 외에 전남 구례 연곡사와 담양 용추사, 강원도 철원군 심원사지에 전하고 있다. 그 중 연곡사 소요대사 부도(보물, 1963년 지정)는 팔각 탑신에 ‘逍遙大師之塔 順治六年庚寅(소요대사지탑 순치육년경인)’에 새겨져 있어 탑의 주인공과 건립연대를 알려준다. 순치6년은 1649년이나 경인년은 1650년이다. 백양사에 있는 소요대사 부도 역시 이 무렵에 건립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한 스님의 부도를 주석한 사찰이나 삭발한 사찰, 입적한 사찰 등에 반복적으로 건립하던 고려 말의 전통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져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