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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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통일신라시대, 동시전 · 서시전과 함께 왕경에 설치된 남시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
제도/관청
설치 시기
695년(효소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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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남시전(南市典)은 통일신라시대, 왕경에 설치된 남시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서시(西市)와 남시가 개설된 695년(효소왕 4)에 서시전(西市典)과 함께 설치되었으며, 남시의 관리와 운영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목차
정의
통일신라시대, 동시전 · 서시전과 함께 왕경에 설치된 남시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
내용

신라에서 물품의 교환과 매매 등의 상업 행위는 일찍부터 있었다. 그러나 나라에서 주도하여 시장을 개설한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 신라본기3 소지마립간 12년(490) 3월조에 “수도에 시사(市肆)를 열어 사방의 재화를 유통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지(상) 동시전(東市典)조에는 508년(지증왕 9)에 동시전(東市典)을 설치하였고,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10년(509) 10월조에는 그 이듬해에 동시를 개설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지마립간 대에 시사는 본격적인 시장으로서 충분한 규모라고 보기에는 힘들었기 때문에, 이를 대대로 확장하거나 혹은 새롭게 대규모 시장을 열었던 것이 동시의 개설일 것이다.

그런데 동시 개설 이전에 그것을 관리하는 관청인 동시전을 두었는데, 이는 신라 수도의 시장이 단순한 상업 활동을 위한 사적 공간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공적 영역이었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왕궁을 포함한 여러 관청 및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곳이었기에, 국가는 이 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관리하여야 했고, 관청 시전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였을 것이다.

신라의 발전과 함께 수도도 번성하였는데, 삼국통일 이후 그것이 극에 달하였을 것이고, 그에 맞게 시장이 확대되고 추가되었다. 신라본기에 의하면 695년(효소왕 4) 10월에 서시와 남시가 개설되었고, 직관지(상)에 의하면 이때 서시전과 남시전도 함께 설치되었다. 이로써 신라 왕경의 3시 체제가 완성되었다.

남시전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남시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남시의 구체적인 기능과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당(唐)나라나 고대 일본의 사례를 통하여 유추할 수 있다.

당나라와 고대 일본에서 관시령(關市令)과 같은 율령을 통해 시장의 개폐 시간, 거래 품목, 가격, 거래 시 사용해야 하는 도량형 등을 규정하고 그것이 지켜지도록 관리하였다. 그리고 시장에서 전문적으로 상업 행위를 하는 시장 상인들을 시적(市籍)에 올려 관리하면서 그 상업 활동에 대한 세금도 거두었다.

시장 상인들은 국가의 통제를 받는 대신 시장 안의 건물을 점포로 이용하고 창고, 운송 시설 등을 사용할 수 있었고, 왕실이나 관청, 귀족 및 사찰 등 고급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세금을 납부한 것이다. 또한 시장의 치안 유지와 도로 및 창고 관리도 국가가 담당하였다. 신라의 시장 역시 이러한 제도로 운영되었으며, 남시전이 남시 제도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신라 3시를 담당하던 관청들은 모두 동일한 직제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장관으로 감(監) 2명이 있었다. 감은 관등이 나마(奈麻)부터 대나마(大奈麻)인 사람이 임명되었다. 그 아래에 대사(大舍) 2명이 있었는데, 사지(舍知)부터 나마(奈麻) 관등 소지자가 임명되었다.

대사는 경덕왕 대에 관호 개정 시 주사(主事)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 대에 다시 대사로 돌아왔다. 또 서생(書生) 2명이 있었다. 서생은 경덕왕 대에 사직(司直)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혜공왕 대에 옛 이름을 되찾았다. 임명할 수 있는 관등은 조부(調府)의 사(史)와 같이 선저지(先沮知)부터 대사였다. 가장 아래의 관직인 사(史)는 4명이었다. 임명할 수 있는 관등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논문

정덕기, 「신라 상‧중대 중앙행정제도 연구」(연세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9)
김창석, 「신라 왕경 내 시장의 위치와 운영」(『한국문화』75, 규장각한국학연구소, 2016)
김창석, 「삼국 및 통일신라의 관상과 관시」(『강좌 한국고대사』-6, 경제와 생활,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2002)
李成市, 「新羅王京の三市について」(『古代東アジアの社会と文化』, 東京:汲古書院,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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