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관음포(觀音浦)에서 순국한 이순신(李舜臣)의 영(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 197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노량은 전라남도 여수를 떠나 충무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연안수로(沿岸水路)의 요충지였다. 1598년(선조 31) 이순신이 관음포 앞바다에서 순국하자 처음에는 이 곳에 유구(遺軀)를 안치하였다. 이순신의 유구는 이 곳에 가장(假葬)되었다가 이듬해인 1599년 2월 11일 충청남도 아산으로 이장했고, 이후 가분묘(假墳墓)만 남게 되었다.
그가 죽은 지 34년째 되던 1633년(인조 11)에 이 곳 선비들이 유지(遺址)에 작은 초사(草舍)를 지어 제향을 올리고 추모하기 시작하였다. 또 1658년(효종 9)에 초사를 헐고 비로소 사당을 건립하여 봄ㆍ가을로 제향을 지냈다.
1663년(현종 4)에 충무 충렬사와 함께 ‘충렬사’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곳에 있는 4기의 비 가운데에는 이러한 중건사유를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 있는데,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썼다.
이 사당이 세워진 그 당시에는 사당 옆에 호충암(護忠菴)이라는 암자가 있어 화방사(花芳寺) 승려 10여 명과 승장(僧將) 1명이 교대로 수직(守直)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비각ㆍ내삼문(內三門)ㆍ외삼문ㆍ재실ㆍ강당 그리고 일각문(一閣門)ㆍ부속건물ㆍ가묘소 등이 있으며, 면적은 1,045평이다.
1965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가 ‘충렬사’와 ‘보천욕일(補天浴日)’ 현판을 다시 썼고, 1973년 6월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보수, 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