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개[梨峴]에 있었기 때문에 이현궁 또는 이현본궁이라 불리게 되었다. 창건연혁은 알 수 없으나 1610년(광해군 2)에 세자빈 간택이 있은 뒤 새로 수리하고 가례(嘉禮) 전에 옮겨 생활하는 별궁으로 삼게 하였다.
그 뒤 1623년(인조 1)에 원종(元宗 : 인조의 아버지)의 비인 연주부부인 구씨[連珠府夫人具氏 : 뒤에 仁獻王后로 추존]의 거소로 하면서 궁호를 계운궁(啓運宮)으로 고쳤다. 이어 병자호란 뒤에는 난으로 집이 없어진 인조의 아우인 능원대군(綾原大君)의 거처로 삼았다. 1631년(인조 9) 효종과 인선왕후(仁宣王后)의 가례가 이곳에서 행하여졌다.
이 후 숙종 때에는 숙빈방(淑嬪房)으로 삼았다가 1711년(숙종 37)에는 연잉군[延礽君 : 뒤의 영조]의 잠저를 이 곳에 두기도 하였다. 정조 때에 이 궁을 폐지하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장용영(壯勇營)을 설치하였고, 순조 때는 장용영의 폐지와 함께 훈국(訓局)·동별궁(東別宮)·선혜청(宣惠廳)·동창(東倉) 등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