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속칭 아왕릉(兒王陵)이라고도 한다. 민회빈은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딸로 강감찬(姜邯贊)의 19대 손녀이다.
소현세자가 정묘·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귀국하여 북벌파와 불목하던 중 죽자, 민회빈은 인조를 정성으로 받들었고 인조도 그를 몹시 아꼈다.
그러나 북벌파에서 강빈이 소현세자를 죽였다고 무고하여, 강빈은 후원에 유치(幽置)되었다가 1646년 사약을 받았으며, 소현세자의 세 아들은 다음해에 제주도에 귀양보내졌다.
죽음과 함께 폐서인이 되어 서민으로 묻혔다. 1718년(숙종 44) 복위되어 민회묘(愍懷墓)라 불리다가, 1870년(고종 7) 영회원으로 개칭되었다. 묘 앞에는 상석(床石)·장명등(長明燈)·문석인(文石人)과 석수(石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