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실록(太祖實錄)』 권4의 태조 2년 7월조, 『악학궤범(樂學軌範)』 권2, 『악장가사(樂章歌詞)』 등에 전하며,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는 악보와 함께 가사 1절이 전한다. 납씨곡(納氏曲) · 납씨(納氏) · 파납씨(破納氏)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태조의 무공과 조선의 창업을 찬양하기 위해 「궁수분곡(窮獸奔曲)」 · 「정동방곡(靖東方曲)」 등과 함께 지어올린 노래로 이 세 노래를 무공곡(武功曲)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악장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지었다.
고려 공민왕 때에 원나라의 나하추(納哈出)가 동북지방에 침입하였을 때 태조가 물리친 무공을 찬양한 것이다. 전체 4장인데, 제1장은 납씨가 강한 병력을 믿고 고려 동북방에 침입하여 행패가 심하였으나 저항하기 어려웠음을 노래하였다. 제2장은 태조가 납씨보다 더 용맹하여 그 요새를 공격하여 나하추와 그의 비장(裨將)을 죽였음을 찬양하였다. 제3장은 태조의 무력이 강하고 공격하는 속도가 빨라 적이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태조의 추격인 줄 알고 놀랐다는 내용이다. 제4장은 마침내 적이 태조를 대적할 수 없어 물러나니 영원히 나라에 근심이 없어졌으므로, 그 공덕은 천만년에 빛날 것임을 노래하였다.
『태조실록』의 경우 5언 4구 4장의 한시로 되어 있고 다른 문헌에는 5언시에 토가 달려 있다. 「납씨가」의 악조(樂調)는 평조인데, 새로 작곡한 것이 아니라 고려의 속악(俗樂)인 「청산별곡」의 곡조를 쓰고 있다. 따라서 한시에 토를 단 것은 이 노래를 「청산별곡」의 곡조에 맞추기 위하여 부족한 글자수를 보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시용향악보』에는 3 · 2 · 3 · 3 · 2 · 3의 16정간(十六井間) 6대강(六大綱)에 모두 8행강(八行綱)으로 되어 있다. 장구와 박(拍)을 위한 악보와 함께 총보(總譜)로 되어 있는데, 제2장에서 제4장까지는 제1장의 반복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조는 10행강으로 된 「청산별곡」의 제8 · 9행강을 제외한 나머지 8행강의 선율과 일치한다.
이 곡은 궁중 연례악(宴禮樂)으로 연주되었고, 또 태조 및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신위를 모시던 전각(殿閣)인 문소전(文昭殿)에 제사를 지낼 때와 경칩 · 상강일에 무리 중의 큰 기(旗)인 둑(纛)을 위해 행하던 제사인 둑제(纛祭)에서 사용되었다. 조선 초기의 악가(樂歌)와 고려의 속악과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