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백제 고분은 여술마을 뒷산 남쪽 사면에서 다수 발견되었지만, 대부분 파괴 또는 훼손되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3기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1973년에 진행된 사방공사(砂防工事) 과정에서 1기의 고분이 파괴된 채 확인된 것을 계기로 조사를 진행하였다.
고분의 구조는 널길이 달린 굴식돌방무덤으로, 널방의 평면은 장방형, 단면은 육각형이다. 고분에 사용된 석재는 널돌에 가깝다. 돌방 내부에서는 13점의 토기가 수습되었는데, 대부분 교란되어 그 위치가 분명하지 않다. 출토 유물의 수는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백제 사비기 왕릉급과 귀족급 고분에 토기가 거의 부장(副葬)되지 않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후 논산육곡리고분 일대는 도로 개설, 농수로 공사 등 지속적인 훼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대다수 고분이 지표에 노출되었다. 이에 따라 1986년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다수의 고분을 확인하였고, 그 중 13기의 고분을 대상으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고분들은 모두 지하에 축조한 지하식 구조인데, 그 중 10기는 이미 도굴 또는 파괴된 것이지만 3기는 훼손이 거의 없는 고분이었다.
고분의 구조는 대부분 굴식돌방무덤으로, 현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단면 형태는 육각형, 사각형, 아치형 등이 모두 확인되지만, 육각형이 가장 많은 편이다. 고분 아래에서 배수시설은 흔적이 확인되지 않으며 봉분은 대부분 유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원래는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지 않은 3기의 고분에서 확인되었는데, 2호분에서는 금동 귀걸이 한 쌍과 항아리 3점, 굽다리접시 5조, 깊은바리토기 2점 등의 토기가, 6호분에서는 금동 귀걸이 한 쌍과 토기 2점이, 7호분에서는 은으로 된 꽃 모양의 모자 장식〔銀製花形冠飾〕 1점, 토기 1점과 함께 많은 관고리와 널못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7호분에서 출토된 은으로 된 꽃 모양의 모자 장식은 피장자의 신분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백제 관등제에서 은으로 된 꽃 모양의 모자 장식은 6품, 내솔(柰率) 이상의 관등을 지닌 사람이 착용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무덤의 피장자는 상류 지배층으로 추정된다.
한편 6호와 7호분에서는 인골(人骨)도 수습되었는데, 6호분의 경우 2개체가, 7호분의 경우 3개체가 확인되어 당시 추가장(追加葬)과 같은 매장 풍습도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논산육곡리고분은 삼국시대 백제의 지방인 논산 지역에서 확인된 고분군으로, 도굴되지 않은 3기의 고분에서 피장자를 추정할 수 있는 자료와 매장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인골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특히 은으로 된 꽃 모양의 모자 장식은 백제 관등제에서 6품 이상이 착용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피장자의 신분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6호분에서는 2개체의 인골이, 7호분에서는 3개체의 인골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당시 매장 풍습을 파악할 수 있다.
백제 사비기 후반기인 7세기 대에 조성된 무덤, 토기 등의 유물 부장 양상이 당시 도읍이었던 부여 지역과 차이가 있어서 이 일대 문화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