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가정리 유적 ( )

고대사
유적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가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우물터.
유적
건립 시기
백제시대
관련 국가
백제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가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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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정읍가정리유적(井邑佳井里遺蹟)은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가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우물터이다. 삼국시대 백제 사비기 우물터로서, 우물은 2기가 확인되었다. 이곳 유적에서 확인된 돌로 만든 곽 안에 큰 항아리를 설치한 우물, 절반으로 쪼갠 통나무 여러 개를 둘러 만든 우물의 형태는 백제 우물에서 별로 확인된 바 없다는 점과 백제 지방의 우물 모습을 보여 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판단되고 있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가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우물터.
발굴경위 및 결과

1969년 한해대책사업으로 들샘을 파다가 우물터가 발견되어, 당시 전주시립박물관장 전영래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가정리유적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전적지로 유명한 황토현 기슭에서 2기의 우물터가 확인되었는데, 우물은 서로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하나는 석곽도관정(石槨陶菅井)이며, 다른 하나는 원형할목정(圓形割木井)이라고 할 수 있다.

형태와 특징

A호 우물은 석곽도관정으로, 평면 방형으로 쌓은 돌로 만든 곽 안에 밑바닥을 도려낸 큰 항아리 몸통을 세운 형태의 우물이다. 석곽의 깊이는 약 1.5m이며, 바닥면으로 내려갈수록 곽의 너비가 약간 좁아지고 있다. 우물의 서남변은 다른 세 변보다 2단 정도 낮추어 만들었는데, 이는 샘물이 넘치면 흐를 수 있게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사질층의 바닥에는 직경 98㎝, 높이 32㎝에 이르는 잘린 큰 항아리를 아가리가 바닥에 닿도록 거꾸로 엎어 놓았는데, 이 항아리는 거친 모래를 섞은 두께 3㎝에 이르는 회색연질토기(灰色軟質土器)인 와질토기(瓦質土器)이다.

B호 우물은 원형할목정으로, 반으로 쪼갠 나무를 평면 원형으로 맞추어 땅에 박아 흙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물이 고이게 한 우물이다. 우물은 직경 5∼20㎝에 이르는 통나무를 길이 155㎝ 정도로 자른 다음 절반으로 쪼개어 아래 끝은 말뚝처럼 뾰족하게 다듬고, 쪼갠 면을 안으로 둥글게 맞추어 박은 것이다. 우물은 반으로 쪼갠 나무 28개를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우물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규모는 직경 95㎝ 정도이다.

유물은 석곽도관정 주변에서 등잔(燈盞)이 확인되었다. 등잔은 직경 7.7㎝, 높이 3㎝의 완형태의 토기로, 가운데에 돌기형의 심지 받침이 있는 것이다. 등잔 바닥에는 성형 후 바닥과 분리하기 위해 끈을 움직여 떼어낸 자국이 남아 있다. 이러한 형태의 등잔은 부여능산리사지, 익산 미륵사지, 부여부소산성 등 백제 사비기 관청, 사찰 등 중요 유적에서 출토된 바 있다.

이외에도 우물 바닥과 윗면 주변에서 토기 조각들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파편이어서 정확한 기본 모양을 추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토기 몸통 표면에 격자무늬와 어깨 부분에 톱니무늬 등이 타날된 두꺼운 큰독 조각, 격자무늬와 집선문(集線文: 다양한 모양으로 선을 모아 둔 무늬)이 타날된 아가리가 직립하거나 바깥쪽으로 구부러진 토기 조각 등이 확인된다.

이 토기들은 형태와 문양으로 보아 원삼국시대(마한)의 토기로 추정되어 우물과 관련 없는 앞 시대의 유물로 판단된다. 석곽도관정 주변에서는 안산암제의 뗀석기 2점과 삼각모양돌칼 3점 등 청동기시대 석기가 수습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삼국시대 백제 우물은 지금까지 한성기 도성인 서울 풍납동 토성에서부터 사비기 도성인 사비도성에서 다양한 형태로 확인되었다. 우물의 축조 재료는 돌을 이용한 것이 가장 많으며, 이외에도 나무와 토기 등을 혼용하여 조성한 경우도 확인되고 있다. 백제 우물의 평면 형태는 원형과 방형이 많고, 장방형, 정(井) 자 형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정읍가정리유적의 A호(석곽도관정)와 같이 석재와 토기를 혼용하여 조성한 우물은 백제 사비기에 해당하는 부여가탑리유적 2호 우물에서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가정리 A호와 같이 정연한 석축 시설 내부에 토기를 세워 조성한 형태는 거의 확인된 바 없다.

또한, 나무로 조성한 우물의 경우에도 가정리 B호(원형할목정)와 같이 절반으로 쪼갠 통나무를 둘러 만든 것도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정읍가정리유적의 두 가지 형태의 우물은 구조나 주변에서 출토된 등잔으로 보아 백제 사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방의 우물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全榮來, 「井邑佳井里 井戶遺構」(『全北遺蹟調査報告』, 全羅北道博物館, 1973)

논문

이명호, 「백제 집수시설에 관한 연구」(목포대학교석사학위논문, 2009)
이신효, 「백제 우물연구」(『湖南考古學報』 20, 2004)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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