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표정리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문화재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조사된 무덤군.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무덤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백제
재질
소재지
충청남도 논산시
시도지정문화재
지정기관
충청남도
종목
시도유형문화재(1994년 11월 4일 지정)
소재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 산58-2번지 외 2필
내용 요약

논산표정리고분군(論山表井里古墳群)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조사된 무덤군이다. 고분군에서는 지점을 달리하여 구덩식돌덧널무덤뿐만 아니라 굴식돌방무덤과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의 고분들이 밀집되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들도 다른 지방보다 종류가 다양해서 이 지역의 계통, 성격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표정리 일대에는 5∼6세기 대에 많은 고분들이 분포하고 지속적으로 조영되었음이 확인되어 백제 지방으로서 이 지역이 중요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조사된 무덤군.
발굴경위 및 결과

함지봉 서남쪽에 자리한 구릉의 남쪽 사면과 서쪽 말단부에서 백제 고분이 다수 발견되었지만, 삭평(削平: 깎아 편평하게 만듦)되거나 개간 등으로 훼손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이 일대의 고분은 1969년에 황산 중턱에서 주1 1기, 1979년 도구머리에서 돌방무덤과 주2 13기, 1981년 인접한 당골에서 돌방무덤과 돌덧널무덤 8기, 주3 1기, 1985년에 하표정에서 돌덧널무덤 16기가 조사되었다. 고분은 상당히 조밀하게 분포하는데, 대부분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으로 주4, 주5주6 등 구조가 다양하며, 독무덤도 소수 확인되었다.

형태와 특징

하표정에서 조사된 고분 16기의 경우 유실이 심한 14호분을 제외한 15기가 구덩식돌덧널무덤으로 확인되었다. 고분은 모두 구릉의 사면부에 입지하며 무덤구덩이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에 평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돌덧널무덤은 무덤구덩이 내 아래쪽에 깬돌 모양 널돌을 세우고, 위쪽은 작은 깬돌을 뉘어서 축조한 후 그 위 좌우 벽의 위쪽에 걸쳐 여러 매의 뚜껑돌을 덮어 축조하였다.

덧널의 평면 형태는 긴 장방형이고, 횡단면 형태는 사다리꼴이다. 유물은 대부분 토기류이고 철제 무기들도 약간 확인되며, 널못은 확인되지 않았다. 고분군의 시기는 접시, 손잡이달린술잔, 주7, 세발달린잔, 긴목항아리, 그릇받침 등의 출토 토기로 보아 대체로 5세기 후반∼6세기 초인 웅진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당골과 도구머리 고분군은 서로 인접한 곳에 자리하여 이어지는 고분군으로 볼 수 있다. 고분군에는 구덩식돌덧널무덤도 있지만, 굴식돌방무덤과 앞트기식돌방무덤들이 확인되는 특징을 보인다. 그 중 당골 6호분, 도구머리 13호분은 현실 한쪽 벽에 무덤길인 널길이 달린 굴식돌방무덤이며, 당골 7호분, 도구머리 7호분 등은 한쪽 벽이 바로 입구인 앞트기식돌방무덤이다.

덧널이나 널방의 장축 방향은 대체로 등고선에 평행하지만, 굴식돌방무덤은 직교하였다. 굴식돌방무덤은 깬돌을 쌓아 축조하였는데, 널방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널길은 오른쪽을 치우쳐 있다. 주8 구조는 문틀이 없는 개구식(開口式)이다.

앞트기식돌방무덤도 깬돌을 쌓아 축조하였는데 널방의 평면 형태는 긴 장방형이다. 유물은 토기류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주로 세발달린잔, 뚜껑접시, 곧은입항아리, 병 등이며, 철기류는 쇠도끼, 쇠낫, 쇠칼, 살포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하표정 고분군과 달리 철제의 관고리나 널못이 출토되기도 하여 목관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분군의 시기는 출토된 토기로 보아 대체로 6세기 대인 웅진기 후반부터 사비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1969년에 황산 중턱에서 조사된 고분 1기는 널문 구조가 문틀식인 굴식돌방무덤이어서 사비기 고분으로 볼 수 있다.

의의 및 평가

논산표정리고분군은 백제 지방인 논산 지역에서 확인된 고분군으로, 지점을 달리하여 고분들이 조밀하게 분포한다.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과 앞트기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구조의 고분이 확인되어 5~6세기 대 백제 웅진기에서 사비기에 걸친 고분의 변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종류의 토기가 출토되어 주9 토기의 변화상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표정리 일대에는 5∼6세기 대에 많은 고분들이 분포하고, 지속적으로 조영되었음이 확인되어 백제 지방으로서 이 지역이 중요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남석, 『백제의 고분문화』(서경, 2002)
安承周, 李南奭, 『論山 表井里 百濟古墳 發掘調査報告書 -1985年度 發掘調査-』(百濟文化開發硏究院, 1988)
서성훈, 신광섭, 「表井里廢古墳群調査」(『中島 진전보고Ⅴ』, 국립부여박물관, 1984)

논문

윤무병, 「連山地方 百濟土器의 硏究」(『百濟硏究』 10,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79)
安承周, 「論山 · 表井里 百濟古墳과 土器」(『百濟文化』 9,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76)
주석
주1

돌로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려 봉토를 만든 무덤. 널길이 달려 있고 천장 구조가 다양하다.    우리말샘

주2

지면을 깊게 파고 자갈 따위의 석재(石材)로 덧널을 만든 무덤. 삼국 시대에 사용했으며 널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말샘

주3

시체를 큰 독이나 항아리 따위의 토기에 넣어 묻는 무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 무덤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쓰여 지금까지도 일부 섬 지방에서 쓰이는데, 하나의 토기만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개 또는 세 개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4

위에서 밑으로 주검을 넣도록 되어 있는 무덤 양식.    우리말샘

주5

지면과 수평으로 판 길을 통하여 널방으로 들어가는 무덤 양식.    우리말샘

주6

세 벽만을 쌓고 한쪽 벽으로 드나든 후, 밖에서 나머지 벽을 쌓아서 막아 만든 무덤 방식.    우리말샘

주7

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고대 식기의 하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해ㆍ경주 등지에서 많이 발굴된다.    우리말샘

주8

무덤 밖에서 널길로 통하는 문.    우리말샘

주9

임금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그 사람이 생전에 쓰던 여러 가지 패물이나 그릇 따위를 무덤에 같이 묻던 일.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서현주(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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