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선도리유적(舒川船島里遺蹟)은 해발 20m 내외의 얕은 언덕의 아랫부분에 자리한다. 북쪽 가까이에 백제시대의 산성이 있고, 서남쪽에 청동기시대 고인돌[支石墓]이 있으며, 그 앞에는 농경지와 서해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마을 주민이 돼지 막사를 신축하던 중 발견하여 신고함에 따라 1994년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된 유구는 2기의 수혈(竪穴)로, 2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자리해 있다. 수혈은 경작층(지표)에서 100㎝ 아래에서 발견되었는데, 2기 모두 돼지 막사의 기초 시설로 인해 파괴된 상황이었다.
제1호 수혈은 평면 장타원형으로, 규모는 너비 244㎝, 깊이 3238㎝이다. 제2호 수혈의 모양이나 양식은 일정하지 않으며, 규모는 길이 810㎝, 깊이 3964㎝이다. 수혈의 벽과 바닥은 매우 거칠게 파진 상태이며, 바닥은 생토면(生土面)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내부 시설로 볼 수 있는 것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유물은 수혈 내에서 적색연질토기, 회청색경질토기와 가락고동, 그리고 청동기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돌살촉과 돌검도 출토되었다.
토기의 종류는 완, 심발형토기, 둥근바닥항아리, 두귀달린항아리, 겹아가리항아리, 밑이 납작한 항아리, 장란형토기, 시루, 동이형토기의 일상용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심발형토기, 장란형토기, 동이형토기는 동체부(胴體部) 표면에 격자문(格子文)을 타날하였다.
시루는 편평한 바닥에 동체부에서 그대로 직립해 올라간 구연부를 갖는 심발형이며, 문양은 문질러 지워진 것이다. 시루의 증기 구멍은 대체로 작은 원 구멍들을 무질서하게 배치하였다.
두귀달린항아리와 겹아가리항아리는 2점 모두 편평한 바닥을 갖는 토기로, 집선문(集線文) 타날 후 가로 방향으로 여러 줄의 침선을 두르고 있다. 두귀달린항아리에는 동체의 상부 양쪽에 세로 방향으로 구멍을 뚫은 귀가 부착되었고, 겹아가리항아리는 외반된 호의 구연 안쪽에 직립하는 구연을 덧붙여 만든 것이다. 두귀달린항아리와 겹아가리항아리는 대표적인 마한의 토기이다.
이외에도 제2호 수혈 바닥에서는 청동기시대 이단경식(二段莖式) 돌살촉과 일단병식(一段柄式) 돌검이 출토되었다. 이단경식 돌살촉은 촉신 단면이 마름모꼴이며, 경부 단면은 육각형과 원형을 띠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돌살촉은 청동기시대 호서 지역 서해안 일대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유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천선도리유적은 일부만 조사가 이루어져 소수의 수혈만 확인될 뿐이어서 전체 유적의 성격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수혈 내 여러 종류의 마한 토기들이 잘 남아 있어서 당시 문화상을 잘 밝힐 수 있는 유적으로 판단된다.
발견된 수혈은 바닥이나 벽 등에서 정연성이 보이지 않고 안에서 일그러진 토기 조각들과 작은 토기 조각, 숯 등이 확인되어 주거지라기보다는 주변의 생활유적 또는 생산유적에서 나온 폐기물의 폐기 장소였을 가능성이 있다.
유적의 연대는 심발형토기, 장란형토기, 동이형토기, 시루 등의 형태와 타날 문양, 두귀달린항아리와 겹아가리항아리의 토기 종류로 볼 때 원삼국시대 마한 후기인 3∼4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당시 호서 지역 서해안 일대의 일상용 토기 문화를 잘 보여 준다고 판단된다.